수해복구나 서민층 지원을 위한 예산이 적정수준에서 효과적으로 쓰이는 것은 긴요한 일이다. 그러나 실질적 효용과 나라살림의 중장기적 안정을 냉철하게 검토하지 않은 채 인심 쓰듯이 예산을 운용해서는 안된다. 선심성 예산의 수혜(受惠)가 당장은 사탕일지 몰라도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계속 늘어나면 결국 다수 국민이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직접적 세부담 증가뿐만 아니라 물가상승 민간투자위축 국가신인도 저하 등에 따른 경제불안 등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정권이 정말 큰 안목에서 나라살림을 걱정한다면 선거를 의식해 선심성 예산사업을 남발해서는 안된다. 정치인들이 무분별하게 지역사업을 끼워넣는 행태에도 단호하게 제동을 걸어야 한다. 부처이기주의에 편승한 각 부처의 예산로비에도 휘둘려선 안된다. 그러려면 대통령 국무총리 등 정치 지도자와 예산처 재경부 등 관계부처의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 거품예산 편성과 혈세 과오용(過誤用)에 대한 시민감시활동의 강화도 요망된다.
현정부 들어 나라살림은 갈수록 부실해지고 있다.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작년에 국내총생산(GDP)의 4.2%인 18조7000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23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또 국가채무는 97년말 63조원에서 작년말엔 143조원으로 배 이상 늘었다. 전(前)정부에서 맞은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사태의 여파가 컸지만 그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인기주의에 빠져 세출팽창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면 빚이 빚을 늘리는 재정적자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현추세의 재정적자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일부 관변의 주장은 무책임하다. 이들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적자상황을 들먹이지만 미국이 유례없는 장기간의 저물가 안정성장을 누리는 배경에는 재정지출을 축소하고 민간투자를 촉진한 정책이 핵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 일본의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적자 확대는 오히려 경기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지적된다.
정부는 재정위기를 키우는 어리석음에 빠져들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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