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사건만을 수사하기 위해서라면 96년 11월부터 98년 9월까지 거의 2년에 걸친 후원회 계좌의 입출금 내용을 추적할 필요가 없다는 게 상식이다. 계좌추적을 시작한 때가 대통령선거 1년전이고, 끝난 때는 현정부 출범후 6개월여가 지난 시점이다. 세풍사건과 관련한 계좌추적기간을 이렇게 넓게 잡은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불법모금한 대선자금의 사용처를 밝혀내기 위한 조치임을 감안하더라도 이해가 안간다. 또한 이런 광범위한 계좌추적이 일일이 법원영장을 받아 이루어졌는지도 의문이다.
검찰의 계좌추적은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한다고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법은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거의 2년간의 거래내용을 뚜렷한 이유없이 추적한 것은 법의 허용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 정치자금 사찰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검찰이 한나라당의 후원자 명단과 후원금 내용을 샅샅이 뒤진 것이 사실이라면 정치자금법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그 의도를 의심받아 마땅하다. 검찰은 후원자 명단을 넘겨받은 일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으나 믿기 어렵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법은 금융거래 정상화와 경제정의 실현외에 금융거래 비밀을 보장함으로써 신용사회를 발전시키자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수사기관이 이 법을 남용해 신용사회의 기반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된다. 나아가 마구잡이 계좌추적이 야당의 정치적 후원자들에게 어떤 불이익을 입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겨준다면 야당의 발전, 민주정치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검찰의 계좌추적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검찰의 불법 계좌추적은 그 자체가 범법행위다. 또 검찰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야당의 정치자금 사찰의혹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크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 검찰에 대한 불신은 바로 이런 데서 쌓인다. 지금 검찰의 최대과제는 ‘정치검찰’이라는 오명(汚名)을 씻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명하고 정정당당한 수사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좌추적의 경우 합법을 가장해 불법적 추적을 일삼는 일은 용납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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