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193)

  • 입력 1999년 8월 12일 18시 23분


나하구 한번 된통 싸웠다.

왜 그 작자가 무례하게 굴었어?

너 내 성질 잘 알잖아. 난 가성 쓰는 놈 하구 폼 잡는 놈 젤 싫어하는 거.

즈이 집이 강남에 빌딩 수십채 있다든가 뭔가 하는데 잘난척이라두 했어?

아니, 그 정도는 아냐. 그래두 그 친구 귀여운데가 있어.

정희는 그제사 안심이 됐다는 표정이었어요.

난 또… 언니 송형이 맘에 들었어?

얼김에 친구가 됐어. 피차에 늙은 복학생이니 잘 됐지. 다툴 사람두 없었는데. 정희가 정색을 하더니 나를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언니 너무 가까워지진 말어.

나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어요.

무슨 말이니, 내가 송가와 연애라두 하겠다는줄 알았어? 그 녀석은 아직 철부지야. 지 코가 어디 달렸는지두 모른다니까. 책이나 딸딸 외우구 있겠지.

언니야 미안하지만… 그 친구두 사람은 좋은데 사고뭉치라서 그래.

사람 좋은 사고뭉치들 지금 학교에 드글드글 한다. 밸 있는 젊은 남자들 다 그래.

나와 박선배처럼 주어진 일이나 또박으로 하구 무관심하게 조용히 살아가는 이들두 많아.

뭘 하진 않아두 관심을 가지고 두 눈으로 똑똑히 봐둬야지. 난 그러는 편이야.

아아 오늘도 점심 시간에 아이들하구 경찰이 충돌하는 걸 봤어. 최루탄 쏘아대구 화염병 날아가구 곤봉으로 내려치니까 피가 구두에까지 흠뻑 젖더라니까. 정말 지긋지긋해.

정희야 나 추석 전에 그이에게 찾아가 볼까해.

그이라니…?

오 선생.

아, 그래? 참 아직두 거기 있겠지. 그렇지만 면회는 직계가족 외에는 안된다면서?

나는 고개만 희미하게 끄덕였어요.

그래, 그래두 찾아가 볼 작정이야. 아무려면 어때. 면회가 안된다면 돈하구 영치품이나 넣어주고, 건물 생김새나 보아두고, 교도관들 얼굴이라도 보고 오지 뭐.

정희는 쓰다 달다 아무 말이 없었어요.

집에 다녀온 이튿날 화실에서 깨어나 아무것도 먹지않고 녹차만 한잔 마시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수화기를 드니까 송영태의 목소리였어요.

여보세요? 한 형? 나 송이야.

아침부터 무슨 일?

어제 그랬잖아. 전화한다구.

그 약속? 난 오늘 어디 갈 데가 있어. 열쇠를 맡기구 갈까?

아니 그럴 필욘 없어. 오늘이 월요일이니까 수요일에 갈거야.

그의 전화가 끊기고 나는 생각이 나서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지요. 언젠가 재판 보러 가서 당신의 누님과 만난 적이 있었거든요. 당신 누님은 내게 그네가 나간다는 대학의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 한 장을 주었어요. 명함이 있었지요. 연구실로 전화를 걸었더니 대번에 그네의 좀 굵은 목소리가 들려오더군요.

저… 전 한윤희라구 합니다. 안녕하셨어요?

한, 윤, 희, …아아 한 선생이세요?

나는 더듬거리며 당신에게 면회를 가 볼 작정이라고 말했고 누님도 못가본지 일 년이 거의 다 되었다구 그랬어요. 교도소를 묻고 교통편과 수번을 묻고.

<글:황석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