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의 대법원장 추천계획은 대법원장의 역할이 우리나라 법치주의 확립에 관건이 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인사청문회제도가 없는 현실에서 이를 대신하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변협의 추천이 임명권자의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어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변협의 대법원장 추천은 그 영향력 때문에 후유증도 적지 않을 것이다. 변협은 전직 대법관이나 대법원장을 지낸 인사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통해 후보를 추천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직 대법원 구성원들이 후임 대법원장 인선에 관여하는 결과가 되는데 이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또 변협의 추천기준과 국민이 바라는 대법원장상(像)이 반드시 같을 수 없다. 국민의사를 반영하겠다는 변협의 취지가 민의와는 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변협이 그동안 사회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온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법조인에 대한 국민 정서는 법조인들의 자부심과는 거리가 있다. 상당수 국민이 변협을 포함한 법조계가 과연 사법절차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고통을 없애려는데 얼마나 노력했는가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사법개혁도 ‘한국적 현실’ 운운하면서 소극적이었다고 본다.
그 결과 불행히도 국민 대다수는 누가 대법원장이 되더라도 사법현실과 제도에 큰 변화나 발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장 추천 논란은 법조개혁의 핵심을 호도하고 법조의 구조적 문제점을 은폐할 수도 있다.
변협이 사법부 위에 군림할 위험성도 있다. 개별 판사에 대해 ‘인사고과적’ 검증작업에 착수한다면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 판사는 별로 없다. 구체적 인물의 추천보다는 대법원장의 요건 또는 불가(不可)사유를 제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대법관이나 대법원장이 재판을 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 나라의 대법관 대법원장이라면 그 이상의 ‘무엇’이 있어야 한다. 지성을 대표하고 변화하는 세계와 사회를 역류하지 않는 유연성 개방성 통찰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박상기 (연세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