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줄지어 늘어선 간판들은 모두 모텔이요, 멋진 서구식 레스토랑이요, 첨단 카페들의 것으로서 그 이름들만으로 미루어 볼 때 이제 이 지역은 유럽의 문화적 영웅들이 모조리 초대된 불멸의 문화거리,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불멸의 문화 영웅들의 이름을 가진 멋진 집들은 사실 자고 먹고 배설하는(어떤 종류의 배설이든) 그런 공간들 일뿐이지 않는가. 게다가 ‘뭐 그렇게 거창하게 서구문화 영웅들의 이름을 붙였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바로 그것이 현재 우리의 문화수준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먹고 배설하고 자는 것. 거기에 조금 더 오락적 쾌감이 있으면 더 좋다.
그 이상의 문화를 우리는 생각할 수가 없다. 또한 생각해서도 안된다. 아버지의 권력에 기생했던 대통령의 아들을 법적 판결에 상관없이(부분적이긴 하지만) 사면해 주는 나라, 국민의 세금을 담당하는 국세청의 힘을 동원하여 선거 자금을 마련한 선량들이 큰소리를 치는 나라, 자신의 무능으로 IMF체제라는 국가 몰락의 위기를 불러오고서도 반성하지 않는 부끄러운 전직 대통령의 파렴치가 통하는 이런 나라에서 ‘먹고 자고 배설하는’ 그 이상의 문화를 생각하다가는 아마도 미쳐버릴 사람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없이 살아야 할’ 우리에게 알맞은 ‘식당―모텔―술집’으로 이루어진 문화 거리를 갖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또한 나의 내면이요, 나의 수준이요, 자화상인 것이다.
그저 생각 없이 살면 된다고, 생각 없이 살자고 저 유흥의 거리들이, 정치가들이, 백화점의 광고 전단들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생각없이 살아야 할, 그렇게 살아야 좋은 내 나라, 내 땅은 사실 해방이 된 지 반 세기가 지났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식민지교육 이념을 그대로 실천해 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식민지 교육의 목표야말로 ‘자기생각을 갖지 않는’, 순응주의적이고 현실에 탐닉하는 사람들을 제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문학 작품들은 허무나 퇴폐, 확실한 오락, 쾌감을 제공하는 일본작품들에 밀리고 독자들은 또 별생각 없이 일본 소설들을 애독한다. 그러나 나는 문학만은 신토불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으로서 일본문학의 허무나 쾌락 지향성은 나름대로 그들의 근대에 대한 절망을 탈출하려는 몸부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식민지적 근대’라는 기형의 것을 겪었지만 그들은 근대에,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등을 다 경험했기 때문에 근대에 대한 절망과 탈근대에 대한 몸부림이 우리와는 상당히 다를 것이다. 곧 그들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가 아니며 그들의 책이 우리의 내면을 반영해 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해야 될 것이다.
생각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문화도 테러나 유흥, 인기 작전을 닮아 갈 뿐이다. 그리하여 이제 곧 사람들이 유흥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머릿속에 유흥가가 번성할 날이 머지 않은 것 같은 극심한 악몽에 나는 시달린다.
김승희(작가)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