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새벽시장 누비는 평화시장 이철학신부

  • 입력 1999년 8월 17일 19시 19분


“신부님,포장마차에서 국수나 한그릇 하시죠.”

불야성같은 새벽시장의 분주함도 어느정도 가라앉은 오전3시. 밤새 상인들을 찾아다니며 면담을 나누던 이철학신부는 소매를 붙잡는 신도의 요청에 포장마차로 발걸음을 옮긴다.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의 이철학신부. 교회가 아닌 시장이 그의 사목현장이다. 상가와 창고들이 즐비한 동평화상가 6층 605호가 그가 먹고 잠자는 사제관이자 미사를 드리는 성당.

이신부가 평화시장에 온 것은 지난 96년10월. 이 지역 두번째 신부다. 이신부가 담당하는 신도들은 동평화시장, 구평화시장, 밀리오레, 두산타워, 프레야, 우노꼬레 등 동대문지역 시장에서 일하는 1천여명에 이른다. 10년전부터 사제없이 ‘청계 공소’ ‘평화시장 공소’ 등의 자발적 공동체를 꾸려오고 있던 신도 상인들에게 사제가 왔다는 사실 자체가 큰 기쁨이었다.

“처음엔 복도에서 10여명의 신도들이 모여서 미사를 드렸지요. 이후 신도들의 자발적인 도움으로 창고를 개조해서 조그만한 성당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평화시장의 사목을 담당하는 성직자는 이신부와 권마리데레사 수녀. 권수녀는 주로 낮, 이신부는 밤에 시장을 돌아다니며 신도들을 보살핀다. 장사에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이신부는 주로 새벽1시 넘어서 신도들을 찾아나선다.

시계 노점상을 하고 있는 한말지나(44)씨는 “성당에서는 신부님과 악수 한번 하기 힘들잖아요. 이렇게 찾아오셔서 건강문제 자녀교육 신앙상담 등을 해주시니까 그저 고마울 뿐이지요”라고 말한다.

평화시장 성당은 가난하지만 봉사활동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는 공동체. 의류시장의 특성을 살려 주로 ‘옷’을 모은다. 신도 상인들의 봉사단체인 ‘빈첸시오회’ ‘마돈나회’에서는 이 옷을 수거해 삼양동 어린이집이나 성가복지회로 보낸다. 이번 수해 때도 이신부는 상인들과 함께 의류 6000점을 모아 문산과 연천지역을 방문했다.

천주교에서는 평화시장처럼 사제가 현장을 돌아다니며 신도들을 보살피는 성당을 ‘선교본당’이라고 부른다. 서울대교구에는 평화시장을 비롯해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노량진 수산시장, 서울종합터미널, 미아동 봉천동 금호동 재개발 지역 등 총 8곳의 선교본당이 있다.

이신부는 “교회가 점차 도시화 대형화 중산층화하기 때문에 신도들이 성당에 가도 소속감을 느낄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교회 안에서 찾아오는 신도들을 맞기 보다는 사제가 직접 현장을 찾아 신도들을 보살피는 것이 2000년 대희년(大禧年)을 앞둔 한국 교회의 새로운 사목방침”이라고 말했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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