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임규진/누구 말을 믿어야 하나

  • 입력 1999년 8월 20일 21시 43분


김태동(金泰東)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과 강봉균(康奉均)재정경제부장관은 현정권 재벌정책의 두 기둥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진보적 성향의 학자출신으로 청와대경제수석을 지낸 김위원장이 이상론에 가까운 재벌개혁을 주장해왔다면 정통관료출신인 강장관은 현실적인 재벌정책을 펼쳐온 셈. 이론적 토대제공과 현실정책 담당으로 역할분담이 돼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 김위원장의 촉발로 기류가 미묘해졌다. 김위원장은 대놓고 정부내에 재벌비호세력이 있어 재벌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강장관은 김위원장의 발언이 개인생각에 불과하다며 일언지하에 묵살했다.

아무튼 정부내에 강온의 조화가 깨진 탓인지 최근의 재벌정책은 조령모개(朝令暮改)식으로 흐르고 있다.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면 청와대는 정재계간담회에 재벌총수를 배제한다고 했다가 이를 번복하는 소동을 벌였다. 재벌금융기관의 상호에 그룹이름을 쓰지 못하게 하자는 방안도 반나절만에 백지화됐다.

“선단식 경영체제를 없애겠다”는 발표에 “이는 재벌해체가 아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각종 재벌관련 어휘의 개념이 무엇인지조차 헷갈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일들은 대통령의 8·15경축사 이후 1주일새 벌어졌다. 혼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 정권의 재벌정책이 김태동노선인지 강봉균노선인지 명확히 정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개혁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도 재벌정책의 목표와 방향, 그리고 그것을 위한 원칙과 논리를 좀더 분명히 해야 한다.

임규진<경제부>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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