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계란으로 바위치기

  • 입력 1999년 8월 22일 19시 00분


법률가에 대한 평판은 늘 가시가 돋쳐 있다. 동양 서양이 다 마찬가지다. ‘좋은 법률가는 나쁜 이웃’이라는 말도 그렇다. 흰것을 검게 만들 수 있는 존재는 법률가와 화가라는 영어 속담도 있다. 법률가 집에서는 쥐새끼도 약삭빠르게 군다는 인도 속담도 있다. ‘의사가 인간을 약하다고, 목사가 어리석다고 본다면 법률가는 인간이 악(惡)하다고 본다’고 말한 것은 쇼펜하워 였다.

▽미국의 유명한 목사 필립 브룩스가 중병으로 드러누워 일체의 면회를 사절하면서도 법률가 잉거솔만은 만나주면서 했다는 말이 유명하다. “다른 사람들이야 천국에서 만나겠지만 법률가인 당신은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법률가라는 직업에 대한 선망은 대단해도 평판이 이토록 껄끄러운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들의 권한이 막중하지만 그들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느끼기 때문 아닐까.

▽법을 다루는 사람들의 가장 큰 죄악은 원죄(寃罪)를 씌우는 것이다. ‘없는 죄’를 씌워 형벌을 내리는 일은 세월이 변하고 인지가 발달해도 거듭된다. 서울시 환경녹지국장으로 있을 때인 88년 건물신축과 관련해 10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됐던 변의정씨(59)도 그런 희생자다. 국장 구청장을 지낸 그런 변씨도 ‘계란으로 바위치기’식 법정투쟁 끝에 누명을 벗었다. 그 세월은 무려 9년이나 됐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미 무릎 꿇고 말았을 것이다. 검찰의 강압수사로 구속기소되고 세번의 재판을 거쳐 뇌물수수는 ‘유죄’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변씨는 진실을 입증하기 위해 거짓 진술한 사람을 만나고 증거를 모아 나갔다. 헌법 소원을 내고 재심을 청구해 줄기차게 다툰 끝에 빛을 본 것이다. 변씨의 승리는 검찰의 무지향 사격같은, 아무렇게나 발사하는 식의 수사에 일대 경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억울하고 사무친 이가 어디 변씨뿐일 것인가.

〈김충식 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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