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중국 또는 러시아와의 외교적 마찰 가능성을 들어 재중 재러시아 동포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들을 제외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고 실제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재중국 또는 재러시아 동포들이 국내로 대거 들어와 사회문제를 일으킬 것을 염려한 근시안적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해외동포 문제에 관해서는 좀더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내다 볼 필요가 있다. 지구상에서 우리 언어와 문화를 사용하는 인구가 적어진다면 결국 한국어와 한국 문화는 사라질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언어를 쓰고 우리 문화를 향유하는 인구가 많으면 많을 수록 한민족의 생존능력은 그만큼 강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이유에서 선진국 정부는 자국의 언어와 문화를 보급하기 위해 실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해외에 보급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성싶다. 재중국 동포는 우리 민족의 존립과 영속을 위한 해외 지원세력이다. 냉전체제 붕괴 이후 재중국 재러시아 동포들과 교류가 가능해지면서 우리는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고 300만명이라는 문화의 우군을 갖게 된 것이다. 이들은 현재 경제력이 어떠하든 장래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향유하며 우리와 협력할 세력이다.
중국사회의 개방으로 인구의 유동이 가속화하면서 조선족(朝鮮族) 청년층은 조선족 공동체 속에서 살기 보다는 중국인 주류사회 속으로 진출해 보다 향상된 생활을 꿈꾸고 있다. 우리 언어나 문화를 유지하기 보다는 한족(漢族)의 언어와 문화를 습득하고 향유할 필요성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조상 대대로 물려온 우리 언어와 문화가 자신의 발전을 위해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판단하게 되면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유지하는 것이 이들에게 실제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태가 10∼20년 가량 가면 한국의 언어 문화를 사용하는 재중국 조선족의 숫자는 지금의 10분의 1로 줄어들 것이다. 우리 민족의 역량은 그만큼 줄어들 것임에 분명하다.
중국을 지배하였던 만주족(滿洲族)은 청왕조를 건설해 중국을 300년간 지배했지만 청왕조가 멸망한지 100년도 못되는 지금 그들의 언어문자 문화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중국 천하를 차지했던 만주족의 사례는 우리에게 타산지석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민족의 절반을 배척해버린 재외동포 법률은 마땅히 미래지향적 안목으로 재고돼야 할 것이다.
권중달(중앙대 교수·해외민족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