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2차'를 꼭 가야하는 사람들

  • 입력 1999년 8월 24일 19시 19분


지정학적으로 보자면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평지의 나라’로 알려진 나의 조국 벨기에와 아주 다르다. 우선 한국인들은 종교에 대한 관심이 크다. 벨기에에서는 수 마일을 지나야 교회가 하나 눈에 띌 정도이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내 친구는 밤에 김포공항에 착륙하면서 본 풍경이 인상적이었다고 얘기했다. 서울의 어느 쪽에 눈을 돌려도 수많은 교회 십자가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수의 벨기에인들은 기독교인이다. 한국인들이 기독교를 스스로 선택해 믿는 것과 달리 벨기에인들은 기독교인으로 탄생한다. 아마 오랜 종교적 전통 때문인지 벨기에 사람들이 종교를 대하는 태도는 한국인들보다 훨씬 개인적이다. 이에 비해 한국인들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종교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열성적인 믿음을 갖고 있다. 아울러 한국에서는 샤머니즘이 삶의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벨기에는 숱한 침략을 겪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듯이 벨기에는 1830년 독립하기 전에는 네덜란드의 영토였으며 그 이전에는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의 침공을 받았다. 벨기에는 세 가지 공용어를 사용하고 유럽 각 국으로부터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같은 영향 탓인지 벨기에에서 지역주의와 지방자치의 뿌리가 깊은 것도 한국과 비슷하다. 글로벌 시대에 지역감정이 강하다는 것은 국가에 폐해를 미칠 수 있다. 단기적으로 정치가들은 지역연고를 부추겨 정치적 이득을 보겠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 지역감정이 국가 경제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제 한국은 내게 김치와 소주의 나라로 다가온다. 한국에 살면서 나는 다양한 브랜드의 소주를 모두 맛보았다.

한국인들은 비즈니스를 하면서 ‘1차’에서 아무리 많은 술을 마셨더라도 손님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단란주점이든 룸살롱이든 ‘2차’를 꼭 가야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독한 양주나 폭탄주를 취하도록 마시고 새벽까지 다른 술집을 전전한다. 상담결과에 상관없이 술자리에서 친분관계, 심지어 우정이 돈독해진다는 것은 외국인의 눈에는 정말 신기한 일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여러가지 궁금증을 갖게 된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어느 때는 외국인을 철저히 무시하면서도 어떤 때는 외국인의 존재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는 한국인의 이중성이다. 어떻게 동일한 사람들이 외국인과 친구가 되면서 다른 한편으로 또 다른 외국인들을 열등하게 취급할 수 있을까.

또 다른 궁금증도 있다. 평소에는 그렇게 점잖고 법을 잘 지키는 한국인들이 거리에 차를 몰고 나가면 갑자기 공격적이고 난폭하게 표변할 수 있는가.

남녀의 평등한 권리가 법에 보장돼 있는 데도 어떻게 정치와 기업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은 그렇게 드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박세리의 성공에 대해 그렇게 자부심을 갖는 나라에서 골프장비의 수입 문제에 대해선 그렇게 날카롭게 대응하는지도 이해하기 힘들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한국에서는 많은 권한을 가진 공무원들이 그 힘을 ‘결정을 내리지 않을 권한’으로 더 자주 사용하는 듯이 느껴진다.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주면 좋겠다.

●올리비에 드 브라클리에(SGS코리아 대표)

[약력]△51년 벨기에 앙트워프 태생 △71년 카르디날 메르시에 학교 졸업 △95년∼현재 SGS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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