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4일 오전6시. 안후이성의 성도(省都)인 허페이(合肥)시의 농산물 시장.
3000평정도 크기의 시장은 활력이 넘쳐나고 있었다. 농산물을 싣고 오는 트랙터의 엔진소리. 손님을 불러대는 목소리, 흥정하는 소리, 팔려나가는 돼지와 오리가 내지르는 소리….
1m정도의 높이에 콘크리트 테이블이 있었고 그 위에는 쌀 보리 등 곡식 외에 온갖 신선한 채소와 과일이 넘쳐나고 있었다.
미국 차이나타운의 농산물시장인지, 사회주의 국가의 시장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농산물 시장을 벗어나자 각종 전자제품을 파는 시장이 있었다. 홍콩에서 방금 발매된 CD 휴대전화 진공청소기…. “돈이 없어서 못사지 물건이 없어서 못사지는 않는다”는 한 농민의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산골벽지의 농촌을 가봐도 달라진 중국 농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직 포장은 안됐지만 수많은 경운기와 트랙터가 오가고 있었고 경운기 짐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40도가 넘는 뙤약볕 아래에서도 농민들은 밭에 나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고 마을 저수지에서는 꼬마들이 벌거벗은 채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또 마을마다 향진기업이라고 불리는 공장들이 들어서 굴뚝에서는 연기가 쉬지않고 나오고 있었다. 향진기업은 시골의 남는 노동력을 활용해서 좋고 농민들은 부수입을 확보해서 좋다는 것이 이곳 관료의 설명.
북한이 이 정도만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중국의 농촌은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산업화에 따른 또다른 문제로 앓고 있다. 마을의 처녀들이 돈을 벌기 위해 모두 대도시로 나가는 바람에 농촌총각들이 결혼하기가 힘들어진 것. 이때문에 지린(吉林)성 등 동북 3성에서는 북조선의 처녀를 사다가 결혼을 하기도 한다. 갈수록 커져만 가는 농촌과 도시간의 소득격차도 심각한 문제.
그러나 이런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마오쩌둥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이 좋으냐”고 묻자 모두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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