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20세기 우연과 필연]중국 개혁-개방

  • 입력 1999년 8월 29일 18시 45분


21세기는 중국의 시대’라는 예측이 나올 정도로 78년 개혁 개방노선을 채택한 이래 중국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오고 있다. 중국의 이같은 발전은 ‘개혁의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의 지도아래 이루어졌다는 것이 정설.

그러나 잠자던 12억 중국인을 처음 흔들어 깨운 사람은 덩 혼자 만이 아니다.

당의 명령을 목숨을 걸고 어기며 새로운 농사방식을 도입한 시골농민 18명. 이들은 신으로 숭앙받던 마오쩌둥(毛澤東)이 그토록 강조했던 ‘공동생산 공동소비’라는 사회주의의 원칙을 깨버리고 사유재산제를 도입했다.

덩은 이들의 성공에 고무받아 중국의 전 농촌에 사유재산제를 도입했고 이를 더욱 발전시켜 사실상 경제의 모든 부분에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사회주의 상품경제’라는 독특한 경제형태를 만들어 냈다.

7월22일 기자는 49년 중국 공산화 이후 처음으로 78년 사유재산제를 도입한 안후이(安徽)성 펑양(鳳陽)현 샤오강(小崗)촌을 찾아 당시 촌장이었던 옌쥔창(嚴俊昌·58·현재 마을 당서기)을 만났다. 사유재산제를 도입할 당시 상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옌은 21년 전 운명의 밤이 생각나는듯 단호한 어조로 “사람이 굶어죽는 사회주의는 가짜 사회주의”라며 입을 열었다.

78년, 마오쩌둥이 사망한지 2년이 지났지만 개혁의 전도사 덩샤오핑의 힘은 아직 미약했고 마오가 남긴 대약진운동 문화혁명 인민공사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던 무렵.

마오의 지시로 시작된 대약진운동(58년)과 문화혁명(66년)의 광풍에 휘말려 5000여만명(중국 공식통계 2000만명)이 굶주림으로 숨졌다.

샤오강촌도 예외는 아니었다. 농사 일은 제쳐둔 채 철생산에 모든 정열을 쏟던 대약진운동 3년 동안 마을 사람 175명 중 60여명이 굶어죽었고 76명이 도시로 나가 구걸을 하기 위해 마을을 등졌다. 정치투쟁에 온 중국이 미쳐 돌아가던 10여년의 문화혁명 기간. 샤오강촌 18가구의 가장들 역시 서로를 고발하고 싸우며 날을 지샜다.

연간 5만㎏에 달하던 식량생산이 1만5000㎏으로 뚝 떨어졌다.

문혁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인 78년 가뭄이 닥쳤다. 샤오강촌 농민들은 지난 20여년간 자신의 부모와 자식들이 굶주림으로 숨져가는 모습을 수차례 봐왔기에 앞으로 닥쳐올 상황도 훤하게 알 수 있었다. 마을 주민 18가구의 가장들은 촌장집에 모여 회의를 거듭하다 의견의 일치를 봤다.

“땅을 가구별로 나눠 각자가 일한만큼 식량을 갖자.” 주민 모두는 공동생산은 ‘일을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에 서로 일을 미룬다는 사실은 모두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다만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땅을 개인적으로 나누어 갖는 것은 당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중대한 범죄였다. 당이 알게 되면 ‘자본주의의 잔재’니 ‘반혁명죄’니 해서 사형을 당하거나 감옥에 보낼게 뻔했다.

주민들은 ‘동네바깥 사람에게 비밀을 엄수할 것’ ‘국가에 낼 공출은 공동으로 정확하게 상납할 것’ ‘이 일로 누군가 처벌받으면 마을전체가 각자 자녀를 18세까지 책임질 것’ 등 3개항을 맹세했다. 18명 한 사람 한 사람이 희미한 촛불아래서 선서를 한 뒤 서명했다.

마치 비밀공작처럼 진행된 식량 생산방식의 변화는 곧 기적을 불러왔다. 79년 식량 생산고가 6만735㎏으로 늘어난 것. 66년부터 70년까지 5년간 생산한 곡식이 단 1년만에, 그것도 최악의 자연조건에서 생산된 것.

샤오강촌의 기적은 안후이성 제1서기인 완리(萬里)에게 전해졌다. 덩샤오핑의 오른팔이었던 그는 곧 이 사실을 덩샤오핑에게 보고했고 덩은 이 사실을 당간부들에게 언급하며 샤오강촌의 변화를 자신의 농업개혁 정책의 근간으로 삼았다. 몇년 뒤 샤오강촌의 농업생산방식 혁명은 전국에 불길처럼 퍼져나가 중국 농촌의 모습을 바꾸었다. 농촌개혁에 자신감을 얻은 덩은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한편 과감하게 외국에 문호를 개방, 외국의 투자를 받아들이면서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만약 샤오강촌 농민의 목숨을 건 도박과 실용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덩샤오핑의 통찰력이 합쳐지지 않았더라면 아편전쟁 이후 세계의 중심에서 멀어졌던 중국이 100년만에 21세기의 슈퍼파워로 재도약할 수 있었을까.

〈안후이성〓이병기기자〉watch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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