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발표된 재벌개혁 후속 조치 중 이사회의 기능 및 역할 강화가 눈에 띈다. 사외이사가 주도하는 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대한 이사후보추천권 부여는 사외이사들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의 계열사에 대한 지분은 5%안팎이다. 그런데도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총수보다 많은 지분을 보유한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가가 과제로 떠오른다. 답은 사외이사제도다. 사외이사는 이사후보를 추천한 뒤 그 역할 감시를 통해 대주주의 독단적 경영에 대한 견제와 함께 경영투명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사의 25% 이상을 사외이사로 채운다는데 과연 그만한 식견과 경륜, 전문지식을 갖춘 적임자들을 개별 기업들이 일시에 확보할 수 있겠는가.
“기업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며 전문인력이 없다는 것을 탓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그래도 기업을 모르는 사람이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교수가 전문가냐는 식으로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을 발굴해야 한다.”
―사외이사나 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평가를 의식한 경영진들이 기업이익보다는 공익적 측면을 중시해 기업경영이 위축될 소지는 없겠는가.
“사외이사는 주주의 이익을 대변한다. 즉 대주주들이 회사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마음대로 집행하는 것을 견제한다. 따라서 사익과 공익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사외이사들이 사업추진에 제동을 걸면 사업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
―정부는 제2금융권 소유규제 방안을 발표했다가 곧 철회했다. 규제포기를 의미하는가.
“그렇지 않다. 경영지배구조의 개선추이를 봐가며 대주주의 지배에 대한 문제점이 사실상 해소되지 않을 경우에는 소유지분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재벌의 은행소유는 물론 제2금융권 지배를 근본적으로 막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경축사에서 밝힌 순환출자의 억제는 계열사 분리, 변칙상속차단등 소유구조문제와 바로 연결된다. 재벌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IMF사태의 발생원인을 따져 보면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돈을 갖다 쓴 기업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방만한 투자와 계열사에 부채 떠넘기기 등과 관련한 대주주의 독주를 견제할 장치가 없었다.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은 이같은 근본 원인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기업을 분해해 개별기업중심으로 전환하고 총수독단경영을 못하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재벌해체가 아닌가.
“아니다. 족벌중심의 선단식 경영방식을 바꾸자는 것이다. 실제 상법이나 주식회사 관련 법은 경영의 주체를 개별 법인으로 규정하고 있지 재벌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개별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나갈 수 있는 체제로의 전환은 현행법상으로도 타당하다. 또 선단식 경영을 고치자는 것은 재벌의 업종다각화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이익이 나지 않는 기업이나 중소기업이 영위하는 분야의 진출 및 인수를 막고 총수의 독단적 경영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대주주가 경영권을 행사하려면 이사로 등재하면 된다. 회장은 권한은 있고 책임은 없다. 이를 막고자한 것이다. 어찌 이것이 재벌 해체인가.”
―그러나 한국적 재벌체제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재벌을 쪼갤 경우 시너지 효과가 약화되지 않겠는가. 예컨대 신속한 의사결정과 투자결정을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의 경우 이것저것 따지다보면 타이밍을 놓치는 사례가 나타나지 않겠는가.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넘어가는 60,70년대에 재벌체제는 장점도 있었다. 그러나 재벌체제는 결국 비능률이라는 부작용도 낳았다. 이제 지금같은 재벌의 비효율성으로는 세계경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김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언급한 ‘이젠 시장이 재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재벌 총수들은 흔히 ‘영감(靈感)’에 의해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있다. 관련 금융기관들이 다른 의견보고서를 내도 먹히지가 않는다. 그러다보니 신용도는 떨어지고 국제적으로도 그렇다. 한보의 예를 보자. 코렉스공법을 떠들면서 관치금융의 지원아래 무리한 사업확장을 추진했으나 결과는 파산으로 끝났다. 대우도 관치금융의 그늘 아래 위험발생요인을 키웠다. 그러다가 시장과 금융기관들이 이제 더이상 이를 수용하지 않으니까 오늘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김대통령의 재벌개혁 방식을 놓고 방향과 색깔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다. 또 김대통령의 경제관이 좀 과격한 것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동의할 수 없다. 98년2월 재계와 합의한 5대원칙에 따라 일관되고 분명하게 추진되고 있다. 과거에는 관료중심으로 모든 상황이 추진됐으나 이번에는 법제화, 즉 제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재무구조개선 약정에서 알 수 있듯이 협의와 합의에 의해 개혁정책이 진행되고 있다. 김대통령은 사회주의와 정반대되는 신자유주의자다.”
―개혁에 저항하는 재벌들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구조조정은 철저히 시장에 맡긴다. 정부는 8·25정재계간담회를 계기로 재계와 합의한 내용들을 법제화할 것이다. 법제화된 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범법행위가 된다. 정부는 당연히 법을 엄정히 집행할 것이다.”
―IMF음모론과 한국경제의 약점을 비판한 오마에 겐이치(일본의 세계적인 경제평론가)의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격주간지에 실린 평론에 불과하다. 그의 주장에 대한 반증을 들어보겠다. 경제위기발생시 한국에서 외화를 대량 급거 인출한 사례는 미국계보다는 일본은행들에서 더 많지 않았는가. 재벌개혁은 미국업계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기업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추진됐다는 점에서 본말을 오해하고 있다.”
―대우와같은운명을맞게될재벌이또 있는가.
“그런 소문이 있다면 근거 없는 얘기다. 대우를 제외한 4대 그룹의 자구노력 이행실적과 부채비율을 보면 상당히 양호하다.”
―대우의 워크아웃으로 신규자금이 지원되면 김우중회장의 경영권행사는 어떻게 되는가.
“워크아웃에 따라 신규자금이 지원되더라도 기존 특별약정에 따른 구조조정계획은 대체로 유지될 것이므로 김회장의 경영권도 지분변경이 생길 때까지는 당장 변화가 없을 것이다.”
―김태동(金泰東)씨가 제기한 인적청산론에 대한 장관의 견해는….
“왜 내가 답변해야 하나. 답변하지 않겠다.”
〈대담=이인길경제부장·정리〓반병희기자〉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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