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언론은 청문회에 왜 그렇게 높은 뉴스의 가치를 부여했는가. 어떤 사건의 뉴스 가치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바람직한 것인가. 때때로 상업성이나 선정성이 기사의 가치를 결정하고 균형 잡히지 않은 편집 시각이 여론의 방향을 설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알고 싶어하는 내용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받는 것이다. ‘알려주고 싶은 것’과 ‘알고 싶어하는 것’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면 독자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난 주 청문회 기사는 독자들이 생각하는 뉴스 가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독자는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데 언론은 의혹만 증폭시킨 드라마에 심취해버렸기 때문이다. 정치적 행사라도 알 권리를 충족시켜 줄만한 뉴스 가치가 없는 사건은 과감하게 평가절하시키는 태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의미 없는 거짓 증언을 중계하는 것보다는 청문회의 제도 개선과 질문자인 선량들의 태도 혹은 성과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것이 더 가치 있었을 것 같다. 한번 등장했다가 무대에서 사라지는 증언자보다는 같은 제도로 다시 등장하게 될 선량들이 국민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최근 많이 실리고 있는 사진의 가치도 새롭게 평가되어야 할 것 같다. 사진이 지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현상은 ‘보는 것’에 익숙한 신세대 문화와 시각적 이미지를 중시하는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변신인 것 같다. 실제 신문 속의 사진은 항상 여유로운 공간을 제공하면서 순간의 이미지로 모든 내용을 전달하는 큰 힘이 있다. 특히 1면에 실린 사진 한 장이 그 날 신문의 가치를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의미에서 터키의참사를 지원하자는 ‘글로벌 휴머니티(Global Humanity)’ 운동의 사진들이 지속적으로 1면에 실린 것은 매우 참신해 보였다. 클로즈업되는 자료들도 독자들의 눈요기를 만족시켜주는 내용이 많았다. 그러나 23일자 ‘가을의 터널’을 알리는 처서(A22면)의 사진이 청문회 준비 사진(A1면) 대신 1면을 차지했다면 그날 아침의 신문은 얼마나 상쾌했을까. 사진의 뉴스 가치도 독자의 눈 높이와 일치되고 참신하고 함축적인 의미를 전달해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진이 많이 실린 신문이 가벼운 화보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역시 사진의 이미지에 걸맞은 뉴스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어야 한다.
사진의 참신한 이미지와 풍부한 기사 정보가 서로 조화될 수 있게 신문지면을 구성하는 ‘테크닉’을 개발한다면 한국 언론사에도 새로운 장르를 개척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정갑영<연세대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