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농촌 살리기 운동’ 무르익는다

  • 입력 1999년 8월 30일 19시 16분


올해로 3년째 전북 무주에서 유기농업에 땀을 쏟고 있는 권혁천(權赫千·40)씨. 경기 성남에서 서점을 운영했던 그는 96년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유기농업 이론과 실무교육을 받고 97년 낙향했다.

귀농본부에서 받은 6개월 교육만으로 어엿한 농부로 변신하기에는 역부족. 처음 2년 동안은 갖고 내려간 ‘종자돈’을 까먹기만 했다. 작년 총수입은 560만원. 일가족 4명의 생활은 자급자족 수준.

그러나 권씨는 올해 들어 부쩍 자신감이 생겼다. 제초제 대신 우렁이를 논 1200평에 넣고 농약과 비료를 치지 않는 고추 콩 참깨 등의 농사에 이력이 붙은 것.

권씨는 “귀농한 뒤에 도시에서의 습성과 씀씀이를 털어내는 것이 어려웠다”며 “살림살이가 힘들지만 생명을 사랑하고 가꾸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만드는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96년 창립한 귀농본부는 생태적 유기농업으로 건강한 농촌을 만드는 게 목적. 전국에 7개의 귀농학교를 운영해 귀농에 필요한 유기농법과 집짓기 장담그기 등을 가르치고 있다.

귀농본부는 지금까지 귀농학교를 통해 귀농희망자 1600여명을 배출했다. 이 중 20%인 320여명이 권씨처럼 실제로 농촌으로 돌아갔다.

졸업생들은 ‘귀농 총동문회’를 결성해 서로 귀농정보를 교환하고 귀농자들도 지역 귀농모임을 구성해 활동하고 있다. 권씨도 무주 진안 인근의 17개 귀농가들과 한달에 한번씩 모임을 갖는다.

이병철(李炳哲·51)본부장은 “흙에서 생명을 가꾸고 기르며 자연과 조화를 이뤄 자립적으로 사는 것을 지향한다”며 “생태귀농은 오늘의 문명사회를 대체할 새로운 시민문명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철학 때문에 97년 1841명이던 귀농자가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인 지난해에는 6409명으로 급증했다. 올해에는 4500명 정도로 줄어들 전망.

귀농본부처럼 90년대 이후 발족한 농촌관련 시민단체들은 70∼80년대에 ‘농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던 틀에서 벗어나 생명운동과 공동체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한국 농민운동의 상징인 한국가톨릭농민회가 그 방향 전환을 주도했다. 그 영향으로 △우리밀 살리기 운동본부 △우리농촌 살리기 운동본부 △귀농본부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 등이 잇따라 출범했다.

91년 결성된 우리밀 살리기운동본부는 물밀듯이 밀려드는 외국산 농산물로부터 국민의 밥상을 지키고 농가소득도 높이면서 식량안보에도 기여하자는 목적 아래 활동하고 있다.

또 우리밀은 늦가을에 씨를 뿌리고 초여름에 수확해 병충해와 잡초 등의 걱정이 없어 농약사용에 따른 피해가 적고 수입밀에 비해 섬유질과 무기질 비타민 등이 월등하게 많은 등 작물 본래의 특성도 좋다는 것.

현재 회원이 15만명을 넘고 전국에 우리밀을 원료로 하는 5개의 가공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밀 가공식품은 수입밀 가공품보다 3배 정도 비싸 잘 판매되지 않고 그에 따라 재정난이 심한게 가장 큰 어려움. 95년 설립된 우리콩 살리기운동본부는 재정난으로 4월 문을 닫았다.

백승희(白承姬·24)간사는 “올해 민간단체지원기금에서 처음 지원금을 받았지만 어려움은 마찬가지”라며 “다행히 최근 먹을거리에 대한 안전의식이 높아져 우리밀 소비가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94년 발족된 농촌 살리기본부는 농촌공동체와 도시공동체를 연결해 소비자와 함께 하는 농업을 실현중이다. 유기농법은 판매처를 잃으면 존립이 불가능하다는 약점을 도시 생활협동조합과의 연계로 보완하는 것. 농촌살리기본부는 현재 생산자공동체와 소비자공동체를 각각 120개 결성했고 가입회원은 6만여명에 이른다. 전국 11개 지역본부가 도농한마당 나눔잔치와 청소년 생태농활 장담그기 등의 교류행사를 전개한다.

정재돈(鄭載敦·45)사무총장은 “2004년까지 우리 농업의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라며 “도시 20만 가구와 농촌 7000 가구의 생활공동체를 조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진기자〉leej@donga.com

◆NGO취재팀◆

권순택(사회부차장·팀장) 김진경(생활부) 윤영찬(정치부) 이진(경제부) 홍성철(사회부) 선대인(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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