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가 취미인 회사원 김영섭씨(35)는 5월 서울 성곡미술관에서 열렸던 ‘엘비스 궁중반점전’에서 회화 조각 작품이 전시된 가운데 자장면을 먹었다. “미각과 시각의 짬뽕이라….흠,맛이 깊다고나 할까.”
요즘 음식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다. 요리를 화제로 올리는 것은 일상적 일이 됐다. 주부뿐 아니라 남성 직장인도 실험정신과 창의력으로 무장하고 직접 요리를 시도한다.
음식점도 단순히 배를 채우는데서 벗어나 ‘더불어’ 먹는 공간이 되면서 눈으로 맛보고, 분위기를 즐기며, 이미지를 소비하는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음식을 소재 또는 주제로 다룬 미술, 출판, 영상물이 쏟아져 나온다. 바야흐로 음식이 새로운 문화적 표현매체로 떠오른 것이다.
▼요리는 문화의 한 장르▼
“장어기름 한방울이 입가에 맺혀 떨어지는 찰나, 그녀는 침과 기름으로 번쩍이는 혀로 그것을 날름 핥아버렸다.”
나온지 석달된 무라카미 류의 요리소설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의 한 대목. 요리를 함께 먹었던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은 가도 맛은 남는다는 식.
주부 박형옥씨의 ‘사위에게 주는 요리책’은 요리법을 통해 페미니즘을 전파하고 유윤명 김영숙씨의 ‘맛있는 연애’는 맛집안내를 하며 연애문화를 가르친다. 유럽 학술원회원인 테오도르 젤딘은 ‘인간의 내밀한 역사’에서 섹스보다 요리법이 더 발달한 이유를 문명론적 시각에서 설파하기도 했다.
올봄 나란히 선보인 영화 ‘북경반점’‘신장개업’은 음식과 조리과정은 곧 인간들의 삶과 같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달말까지 연장공연에 들어간 연극 ‘풀코스 맛있게 먹는 법’은 사랑을 음식에 비유하고, 13일부터 방영되는 SBS TV드라마 ‘맛을 보여드립니다’는 한식집을 무대로 인생의 다양한 맛을 그린다.
“음식+문학, 음식+영상 등 음식과 기성문화와의 ‘짬뽕’은 팝과 클래식음악의 크로스오버처럼 음식이 문화의 한 장르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현상”이라고 문화비평가 김성기씨(현대사상 주간)는 분석한다.
▼왜 음식인가▼
양에서 질과 건강으로,그리고 맛과 멋의 중시로 옮아가는 이같은 음식의 ‘신분 상승’을 소득수준의 향상 때문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예술과 일상생활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일상생활의 미학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유쾌한 융합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큰 특징이기도 하다. 노동사회에서는 배를 불리는 것이 음식의 1차적 기능이었지만 소비문화사회로 들어서면서 음식에 미학적 쾌락적 기능까지 보태지는 ‘요리의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이 나타난 셈이다.
게다가 요리는 도시에 사는 인간이 자연을 직접 주무를 수 있는 몇 안되는 ‘여가활동’이다. 식탁에 올려진 생선은 바다이고, 야채는 들판이다. 자연을 가공하면서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환경을 생각하게 만드는 ‘에코 쿠킹’까지 등장했다.
▼삶을 맛있게▼
이같은 미각의 향연을 모든 사람이 즐기는 것은 아니다. “음식에 대한 선호도는 교육수준 출신계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간파한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브르디외의 말마따나 문화로서의 음식을 향유하는 이들은 젊고 교육받았으며 중산층이상의 생활을 하는 계층이 대부분이다.
최근 음식에 대해 번지는 깊은 관심에 대해 ‘엄마가 딸에게 주는 부엌의 지혜’를 번역한 박금옥씨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궁극적 관심사는 즐거움이고 그 중 하나가 음식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맛을 낼까 ‘궁리’가 필요하다. 인생도 어떻게 맛있게, 멋있게 살까 궁리해야 한다.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은 분명 행복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사람이 아닐까.”
〈김진경기자〉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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