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212)

  • 입력 1999년 9월 3일 18시 29분


그도 아니면 식구통을 열고 입만을 내밀어 전 복도가 울리도록 연설을 하고. 복도를 달려오는 구둣발 소리가 요란해지면 나는 젓가락을 들고 눈을 찌르겠다며 방어를 하고 오물을 준비했다가 뿌리기도 하고 매트리스를 들고 열리는 문을 막아 서기도 하는 것이다. 드디어 대 여섯 명의 교도관들이 달려들어 나를 복도 밖으로 끌어내어 팔을 꺾어 뒷수정을 채우고 포승으로 팔을 묶고 입에는 나무 재갈에 가죽 끈이 달린 방송구를 채운다. 입 안 가득히 나무조각이 들어와 박히면 혀가 짓눌리고 침은 질질 흘러서 턱 밑을 적신다. 그 모양대로 끌려가 징벌방의 먹방에 갇힌다. 일반수들은 옴짝달싹 못하도록 한 평도 못되는 비좁은 공간 안에 여섯 일곱 명 정도를 쑤셔 넣지만 그래도 정치범이라고 혼자 쳐박아 놓는다. 다리에는 가죽 띠에 쇠사슬이 달린 족쇄를 채워 둔다. 컴컴한 방의 어둠에 익숙해지면 희미하게 문 아래 쪽에 식구통이 보이는데 꼭 난로 화구만하고 그것도 바깥 쪽으로 문이 달려 있어서 밥을 넣어줄 때 말고는 굳게 잠겨 있다. 방 안쪽에 변기 구멍이 보이고 위의 벽은 두터운 시멘트로 쳐발라져 있고 거의 꼭대기쯤에 두어 뼘 크기의 환기구가 뚫려 있다. 시간이 가는 것은 좁은 환기구 사이로 새어 들어온 햇빛의 경사와 각도의 변화며 빛의 뚜렷함과 희박함으로 짐작을 한다. 이러한 급변한 상황을 인식하고 방안과 바깥 복도와 환기구 넘어의 사동 앞 공간을 파악하는데 두어 시간이 걸린다. 이맘때가 되면 입 안의 방송구 때문에 상의 앞섶은 흘러내린 침으로 거의 흥건하게 젖어있고 미칠 지경이 되어 버린다. 말이 들끓는 물처럼 가슴과 목구멍에 꽉 차올라서 뚜껑을 열지 않으면 곧 터져버릴 것만 같다. 아무리 크게 소리를 지르려 해도 이이이 하는 이상스런 괴성이 혓뿌리 끝에까지 도달했다가 목구멍 너머로 맥없이 삼켜져 사라진다. 한나절이 지난 다음에 철문 윗쪽에서 철컥, 하는 쇳소리가 들리면서 시찰구가 열리고 지시를 받은 징벌방 담당의 두 눈이 나타난다. 징벌자의 눈이 아직도 증오와 분노에 차있으면 시찰구는 매정하게 다시 닫히지만 그들이 열어볼만한 때에는 거의가 옆으로 늘어져서 기진맥진해져 있다. 문이 열리고 복도의 자유로운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담당은 사무적으로 냉정하게 묻는다.

시끄럽게 하지 않는다면 방송구를 풀어주지. 조용하겠나?

징벌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만두라고 하지 않아도 제발 제발 하는 모양으로 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신의 손이 방송구의 가죽 끈을 풀어준다. 수인은 입을 크게 벌리고 몇번이나 큰 숨을 내쉬고 자유로워진 혓바닥으로 아래 윗 이빨이며 입술을 핥아 본다. 철문이 다시 닫힌다. 이제는 묶인 두 다리를 굽혀 무릎을 세우고 두 팔은 뒤로 묶인채로 벽에 기대어 앉는다. 이상하기도 해라, 내 방도 이것과 비슷한 크기이건만 창 하나가 없음으로 해서 세계는 완전히 쪼그라들어 있다. 나는 어둠 가운데 짓눌리는 것만 같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조사를 받던 저 지하실의 방음 처리가 된 하얀 방에서처럼 모든 과거는 백지 상태이며 현재의 내가 매우 객관적으로 함께 존재한다. 손톱 끝으로 수갑이 닿은 부분을 꼭 눌러보면 너무도 아픔이 또렷해진다. 등 어느 모퉁이의 가려움도 오랫동안 뒤틀린 어깨에 뻣뻣하게 쥐가 나는 것도 숨이 코와 입으로 들락거리는 사실까지도 너무 생생하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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