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휴대전화 감시사회

  • 입력 1999년 9월 3일 18시 29분


휴대전화는 이제 웬만한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다니는 생활필수품이 됐다. 휴대전화 가입자 2000만명 시대는 우리에게 엄청난 생활의 혁명을 가져왔다. 그러나 편리함에 도취돼 있는 동안 휴대전화는 어느새 우리의 사생활 영역을 파괴할지도 모를 ‘위험한 도구’로 변질되고 있다.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등이 올해 상반기에 범인추적이나 범죄수사 등을 이유로 휴대전화 통화사실을 확인한 건수가 작년 동기에 비해 175%나 급증했다는 보도다.

휴대전화 통화사실 확인은 물론 대화내용을 엿듣는 감청이나 도청과는 다르다. 누구와 통화했는가, 사용시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를 확인하는 데 그친다. 그러나 감청은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해 법관의 영장이 있어야 되는 반면 통화사실 확인은 수사기관의 요청만으로 가능해 남용의 소지가 훨씬 크다. 서면요청 원칙을 어기고 신분증만 보이고 조회하는 수사관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올해 상반기 통화사실 확인 건수는 4만8000여건에 이르렀다. 건수의 증가만으로 문제가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으나 남용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수사정보기관들의 불법감청과 일반인들의 마구잡이 도청의 증가가 전화통화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러더(Big Brother)’가 지배하는 철저한 감시사회를 연상케 한다면 과민반응일까. 사생활의 비밀도 국가안보나 치안유지 등 공익적 목적을 위해 어느 정도의 제한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 상반기 1만7000여건이었던 휴대전화 통화사실 확인 건수가 올들어 4만8000여건으로 폭증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휴대전화 추적은 범인을 쫓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요즘같은 광역범죄 시대에는 특히 그렇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걸핏하면 휴대전화를 추적해 손쉽게 수사하는 데만 익숙해진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조지 오웰이 상상한 끔찍한 세상이 안 온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 수사방법은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는 게 원칙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무고한 시민들의 사생활이 침해될 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구체적 대화내용은 아니더라도 통화상대방 자체를 비밀로 해야 할 때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국민의 정부’의 인권보호 의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부의 진정한 얼굴이 과연 인권보호인지 헷갈린다.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논란끝에 개정키로 했던 감청에 관한 통신비밀보호법까지 포함, 휴대전화 추적문제를 국회가 충분히 논의해 주기 바란다. 이번 기회에 휴대전화 추적에 대한 확실한 법적 제동장치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빅 브러더 공화국’이 되고 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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