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장애인 손발이 된 ‘사랑의 소방대원’

  • 입력 1999년 9월 3일 19시 04분


서울 강남구 세곡동 산36 대모산 끝자락에 자리잡은 ‘참빛 장애인교회’(원장 김종임·金鍾任·여).

10년전 건립된 100여평의 낡은 비닐하우스 가건물에서 김원장을 비롯한 5명의 여전도사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70명의 중증장애인 식구들은 요즘 더욱 쓸쓸하고 적적하다. IMF사태 이후 방문객이 뚝 끊긴데다 후원금마저 크게 줄어 때론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살림살이가 빠듯해진 것.

그러나 이처럼 힘든 여건 속에서도 잊지 않고 교회를 찾아준 서울 강남소방서 소속 수서소방파출소(소장 이봉환·李奉煥)대원들의 숨은 봉사가 이곳 식구들에겐 큰 힘이다.

매주 한차례씩 비번날을 택해 교회를 찾은 박원진(朴元鎭·49)부소방장 등 20명의 대원들은 밤샘 근무의 피곤함도 아랑곳없이 건물 보수 빨래 목욕시키기 식사 수발 등 크고 작은 살림살이를 돕고 있다.

이곳에서 2년째 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는 이기옥(李基玉·35·여)전도사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달려와 준 대원들이야말로 가장 든든한 후원자”라고 말했다.

이곳 식구들과 대원들이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년전.

뇌성마비 다운증후군 등 중증장애의 합병증으로 잔병치레가 잦은 이곳 식구들을 밤낮 없이 병원으로 옮기는 일은 늘 인근에 위치한 파출소 대원들의 ‘몫’이었다. 이상준(李相準·30)소방사는 “그 과정에서 교회의 열악한 환경을 알게 돼 뭔가 도움될 일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곳 식구들은 올 여름을 지내기가 어느 해보다 수월했다. 해마다 이맘 때면 ‘연례행사’처럼 치렀던 극심한 ‘물기근’에서 해방될 수 있었기 때문. 그린벨트 안의 ‘보금자리’이다보니 상수도 허가가 나오지 않아 교회 주변의 지하수를 길어 사용했던 이곳 식구들은 한 여름이면 세수나 빨래는커녕 마실 물조차 부족해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넉달전 교회측의 딱한 사정을 접한 대원들이 2주에 한번씩 소방차로 물을 직접 실어나르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얼마전 전국을 할퀴고 간 수마(水魔)에 별다른 피해가 없었던 것도 구슬땀을 흘리며 교회 뒤편의 낡은 축대를 미리 보수해 사고예방에 만전을 기한 대원들 덕분이었다.

2일 오전 교회를 찾아 장애아동들을 목욕시킨 10여명의 대원들과 이곳 식구들이 한자리에 앉아 얘기꽃을 피웠다. “사회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경제적인 도움 못지 않게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손길이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선천성 뇌성마비로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이곳에 온 이사무엘군(9)의 손을 꼭 잡은 임창규소방사(32)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동아일보 361―0271∼8, 오운문화재단 080―311―3233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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