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위험성 숨겨와▼
미국은 64년 외과의사협회에서 흡연이 폐암 등의 원인이 된다는 질병보고서를 최초로 발표했다. 이것을 계기로 흡연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미국 연방정부는 70년부터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경고문구표시 의무화법을 제정했다.
미국의 담배소송은 50년대부터 시작됐다. 처음 40년간은 한번도 원고가 이기지 못했다. 피해자가 이기기 시작한 것은 94년 담배회사에 불리한 증거들이 나타나 주정부들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부터이다. 미국의 담배소송은 50∼69년, 70∼89년, 90년 이후 등 3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 소송에서는 담배회사 스스로도 흡연의 위험을 알지 못했다고 적극 방어를 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원고가 패소했다. 2단계 소송에서는 담배가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피운 것은 흡연자가 위험을 스스로 감수한 것이라는 피고 측의 방어 논리가 받아들여져 원고가 패소했다. 70년부터 시작된 경고문구가 원고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셈이다.
이와 같이 40년간 원고가 패소한 것은 해로운 담배 제조자보다 담배를 피운 흡연자를 비난하는 사회 분위기가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94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한 ‘새로운 증거’는 피해자를 비난하던 종래의 정서를 담배회사의 책임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것은 담배회사들이 60년대부터 담배가 암과 직접 인과관계가 있고 중독성 물질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사실이다. 흡연자를 중독자로 만들기 위해 고의적으로 니코틴을 조작했으며 어린이까지 흡연자로 만들려는 상술을 사용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를 계기로 3단계 소송이 시작됐다. 이 때 사용된 원고의 이론은 수십년간 이런 사실을 은폐하고 대중을 속였다는 것을 이유로 한 ‘사기’가 주종을 이루었다. 담배의 중독성에 대한 과학적 증거도 등장했고, 경고를 받고도 계속 피운 흡연자를 ‘중독된 피해자’로서 책임을 묻지 않는 분위기도 조성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거액의 배상합의가 나왔고 개인소송에서도 승소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국민건강권 보호돼야▼
한국에서는 76년 최초의 경고가 시작됐지만 ‘건강을 위하여 지나친 담배를 삼갑시다’ 수준이어서 직접적인 경고문이라 볼 수 없다. 89년 시작된 ‘흡연은 폐암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정확한 경고의 시작으로 본다. 한국에서는 미국 외과의사협회와 같은 보고서도 연례적으로 나온 적이 없고 흡연의 위험성이 대중매체를 통해 본격 알려진 시기도 90년무렵 부터이다. 따라서 현재 폐암 등에 걸린 환자들은 60년대부터 담배를 피워온 사람이 대부분인데 약 30년간 ‘무지’의 상태에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담배소송은 제조물의 위험에 대한 적절한 경고를 하지 않은 ‘지시상의 결함’을 이유로 한 제조물 책임이론에 의하는 것이 적절하다. 담배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속인 것을 입증할 수 있다면 사기를 이유로 한 불법행위 이론도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한국에서 미국만큼 담배소송에 대한 법률적 의학적 이론이 축적되지 않았고 담배소송의 선례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인이나 판사들이 피해자를 진짜로 동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섯부른 소송제기는 많은 위험부담이 따른다. 한국 사회에서도 많은 전문가들의 연구결과가 나와야 할 때라고 본다. 이같이 복잡한 성격을 지닌 담배소송은 국민의 건강권 보호 차원에서 공익소송의 일환으로 전문가 시민단체 변호사단체의 폭넓은 참여로 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배금자 (한국 및 미국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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