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 먹방은 거기 갇힌 자에게서 인간다움의 상징인 사고의 자유로움까지 앗아가 버린다. 도무지 무슨 생각 따위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목적을 정하고 거기에 몰두해야만 그는 자신이 살아있는 육신을 갖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그렇지, 나에게는 도구가 있었지. 수갑을 열어야 한다. 마루 틈에 간직해 두었던 못을 더듬어 집어 올린다. 두 팔을 뒤로 돌려 손목끼리 수갑을 채우고 그 위에 포승을 조여서 묶고 두 팔뚝까지 묶어 두었기 때문에 팔이 저리다못해 감각이 없고 손가락들도 무뎌져 있다. 우선 못을 쥔 손가락들을 계속해서 움직이며 그 간격과 미세한 움직임, 이를테면 원이라든가 직선이라든가 곱표라든가 아래 위 옆을 확인하면서 오랫동안 꼼지락대는 동작을 익힌다. 그리고는 더듬어서 다른 쪽 손목의 열쇠 구멍 속에 집어 넣고 안의 정교한 구조들을 더듬으며 익혀 나간다. 뭔가 걸리는 것을 확인하고 수십번이나 돌리고 쑤시고 당기면서 방향은 어딘지 힘은 얼마나 가해야 하는지 느낌으로 경험들을 정리하고 쌓아 나가면서 반복하고 또 다시 시작한다. 손가락들은 점점 더 정교하고 세심한 조작에 익숙해지고 나는 눈을 감고 다른 생각을 쫓는다.
너른 들판에는 보리가 자라나 바람에 물결치듯 출렁이고 있다. 들판 맞은편 언덕 위에는 소나무들이 구부정하게 서 있는 작은 솔밭 언덕이 보이고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은 휘어져 돌아 언덕 옆으로 해서 멀리 보이는 개천의 다리를 건너 산 뒤편으로 구부러져 있다. 길 양편에 드높은 미루나무들이 줄지어 섰는데 나뭇잎들이 바람에 나부껴 반짝이는 배를 드러낼 때마다 나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내가 걷고 있지만 발이 울퉁불퉁한 땅바닥의 돌이나 바위에 닿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흙길이 알맞게 축축해서 푹신하고 말랑거리는 감촉이 발바닥을 간지럽힐 정도이다. 나는 꿈에서처럼 소리없는 동작으로 미끄러지듯이 길을 간다.
찰카닥, 하고 투명한 쇳소리가 들리면서 톱날 달린 수갑의 걸쇠가 위로 쳐들린다. 나는 손을 살그머니 빼어낸다. 이번에는 위에 묶은 포승을 풀어낼 차례다. 손가락들은 저희끼리 꼼지락대면서 줄의 고리와 매듭을 확인해 나간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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