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215)

  • 입력 1999년 9월 7일 18시 21분


옭매인 매듭은 작은 돌멩이처럼 단단하고 요지부동이다. 처음에는 매듭을 더듬어 보고 손가락 끝으로 꼬집듯이 힘을 주어 보기도 한다. 손가락이 자꾸만 미끄러진다. 얼마 뒤에야 매듭이 아니라 그 아래 포승의 줄을 위로 어떻게든 쑤셔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로 밀어올리려고 이리 저리 비틀며 힘을 쓰다보면 어느새 매듭이 조금 헐거워진 느낌이 온다. 한 손으로는 줄을 밀어 올리고 다른 한 손은 매듭을 잡아 뽑는다. 거의 움직이지 않던 매듭이 뻑뻑하게 그리고 미끄럽게 술술 뽑혀 올라온다. 매듭은 여러번 거듭 매어져 있지만 처음 것을 풀고나면 대개는 다른 것들도 헐거워져 있다. 줄이 길기도 해라. 손목의 안과 밖으로 미로처럼 휘감긴 줄을 그 끝이 지나갈 때까지 계속해서 당긴다. 첫 매듭을 풀기까지 한 시간쯤 걸린 뒤에 다시 다른 매듭과 줄을 손목에서 풀어내기까지 한 시간이 더 걸린다. 두 손을 휘감은 줄은 헐거워져서 손목에 힘을 주어 당겼다가 늦추었다가 하다보면 구멍을 남기고 손목만 빠져 나온다. 포승의 남은 줄은 두 팔뚝에 달려 있는 채로 나는 기진맥진해서 뒤로 벌렁 드러눕는다. 그리고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해보고 가려웠던 콧등도 긁어 보며 누워서 휴식을 즐긴다. 환기구 틈새로 들어온 달빛이 긴 마름모꼴의 희부연한 빛이 되어 뼁끼통의 시멘트 벽 위에 얼룩처럼 찍혀 있다.

어느새 잠들었던 모양인가. 기상 전 야근자들이 교대하기 전에 도는 마지막 순찰 시간이 되었다. 아래층에서 철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근무중 이상무! 하는 담당의 작은 목소리가 절도있게 들려온다. 나는 눈을 번쩍 뜨고 얼른 풀어둔 수갑과 포승줄을 궁둥이 아래 밀어넣고 팔을 돌려서 등 뒤로 감추고 잠든 시늉을 한다. 구둣발 소리는 참으로 더디게 천천히 다가오는 것만 같다. 발자국 소리가 방 문 앞에서 멎더니 시찰구 열리는 소리가 찰카닥 하고 들린다. 나는 똑바로 드러누운 채로 실눈을 뜨고 시찰구를 바라본다. 순시하는 당직자의 모자가 스쳐가는게 보인다. 발자국 소리가 다시 멀어진다.

그맘때 나는 완전히 잠이 깨어 다시 수갑을 찬다. 다만 한쪽 손목에만 정식으로 차고 다른 손목은 채우지 않고 구멍을 남기고 있던 포승에 손목을 집어 넣고 자유로운 한 손으로 매듭도 만들고 조이기도 해서 처음과 비슷하게 매어 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헐겁고 둥글게 잠가둔 한쪽의 수갑에 손을 오므려서 집어 넣는다. 이제는 언제든 그 구멍에서 한쪽 손을 빼내어 자유롭게 될 수가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못도 있잖은가. 못은 내가 빼어냈던 그 모퉁이의 널판자에 다시 얌전하게 박혀 있다. 내가 언제든 마음 먹기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겪어서 알고있는 나는 이미 승리자와 같다. 먹방의 어둠과 비좁은 시멘트의 벽도 나를 더 이상 압박하지 못한다. 언제나 감방에서는 처음이 어려웠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일주일쯤 지나면 아무리 나쁜 상황도 익숙해지고 그럭저럭 지낼만하게 된다. 하지만 상담이라도 한다고 관구실이나 보안과에 끌려 나가게 되어 밝은 햇볕 아래로 걸어가게 되면 그 후유증은 오래 남는다. 우선 징벌 사동에서 마당으로 나서자마자 두 눈을 뜰 수가 없다. 눈을 감으면 눈꺼풀 아래 노란 빛이 가득 차면서 현기증으로 어지러워지면서 비칠거리게 된다. 담당도 그런 꼴을 뻔히 알고 있어서 등을 밀던가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면서 냉소한다.

두 달만 거기서 썩어라. 모범수가 되어서 나올테니깐.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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