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80만명 가운데 이미 수백명이 희생됐고 강제 소개되거나 탈출한 주민들만 해도 10만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코소보에 이어 이제는 인도네시아계 민병대가 동티모르에 대한 인종청소를 하고 있다는 끔찍한 보도도 나온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국제적인 시선을 의식, 급기야 이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등 사태수습에 나섰지만 내심 동티모르의 독립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따지고 보면 동티모르가 오늘과 같은 처참한 상태가 된 데는 국제사회의 책임도 크다. 동티모르가 포르투갈의 지배 아래 있다가 가까스로 독립한 것은 75년이다. 그러나 독립한 지 며칠도 안돼 인도네시아군이 기습적으로 침공을 감행했고 그 결과 주민의 3분의 1 이상이 살해되거나 부상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동티모르 주민들의 필사적인 독립운동을 국제사회는 외면해 왔다. 동티모르 주민들에 대한 인도네시아당국의 인권유린이 공공연히 자행돼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인도네시아와의 관계를 더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인권보다는 오로지 국익만 따진 것이다.
국제사회가 더 이상 그같은 방관자적 태도를 견지해서는 안된다. 동티모르 주민들의 독립의지는 지난달 30일 실시된 투표로 이미 확인됐다. 아무리 작은 규모라 하더라도 주민들의 독립 자결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같은 권리가 처참히 짓밟히는데도 외면만 한다면 그것은 인류의 양심과 정의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더구나 동티모르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대로 놔둔다면 지구촌은 후세에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될 또다른 오점을 남길 것이 분명하다.
다행히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동티모르에 대한 평화유지군 파견을 준비하는 등 대책을 서두르는 모양이다. 그러나 동티모르의 비극이 중단되려면 무엇보다 인도네시아정부가 동티모르 주민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큰 나라다운 아량을 보여야 한다. 그와는 반대로 동티모르 민병대 학살극의 배후가 인도네시아정부군이라는 외신보도가 사실이라면 인도네시아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본란이 지진으로 고통받고 있는 터키국민을 돕자며 여러차례 강조했듯이 이제 국제사회는 모두가 이웃으로 공생공존하고 있는 시대다. 나와 남의 고통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다음 세기 지구촌을 더욱 정의롭고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서도 킬링필드가 되고 있는 동티모르를 하루빨리 자유로운 독립국가로 다시 태어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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