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상자 숫자보다 더한 것은 인류가 이런 대재앙을 스스로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의 ‘발견’이었다.
당시 유럽의 정세를 살펴볼 때 전쟁의 발발은 피할 수 없었다.유럽은 독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3국 동맹과 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3국 협상으로 갈려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베오그라드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그토록 오래 지속되고 사상 최대 규모로 비화하리라고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쟁이 길어진 것은 무엇보다 양측의 전력이 균형을 이뤘기 때문이었다.
동맹국은 숫적으로는 열세였지만 독일의 우월한 군사기술이 이를 보완했다.유럽을 휩쓴 애국심의 물결도 전쟁을 질질 끌었다.
1차대전은 ‘전쟁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그전에 개발된 기관총과 속사포가 본격적으로 사용됐고 비행기가 전투에 이용됐다. 치명적인 독가스도 등장했다. 각국은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 무기를 경쟁적으로 개발했다.
전쟁은 미국의 참전에 힘입어 전세가 연합국측으로 기울면서 4년만에 끝났다. 하지만 완전한 평화가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2차대전까지의 ‘휴식기’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우울한 20세기의 개막이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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