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E메일까지 뒤지다니

  • 입력 1999년 9월 9일 19시 21분


전화, 휴대전화는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PC통신과 인터넷의 사이버 세계까지도 안심할 수 없는 세상이다. 보도에 따르면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등 수사기관들은 천리안 하이텔 유니텔 나우누리 넷츠고 등 PC통신과 인터넷업체에 수사를 명목으로 가입회원들의 개인 인적정보를 요구하거나 E메일 열람을 계속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이용자의 ID(사용자 고유부호)와 비밀번호를 그대로 넘겨받아 특정인의 모든 정보를 가로채는 ID감청까지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올해 상반기 이들 수사기관의 휴대전화 통신내역조회건수가 전년도 상반기에 비해 130% 이상 늘어난 4만8000여건에 이르렀다는 보도에 이어 접하는 소식이어서 일반국민으로서는 다시 한번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에 속하는 사생활 비밀조차 전혀 보호받지 못한다면 정부의 역할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 의문도 갖게 된다. 더구나 역대 어느 정부보다 인권을 중시한다는 ‘국민의 정부’에서 국민의 사생활 자유가 점점 위축되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안이나 중대 범죄를 수사하기 위한 제한적 감청행위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는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수사기관측이 내세우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이동통신업체 관계자들은 “경찰 검찰 관계자가 신분증을 제시하고 정보제공을 요청할 경우 거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수사기관측은 정보제공요청에 필요한 소정의 문서제출 규정도 거의 지키지 않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마구잡이 감청과 열람이 자행되고 있는 셈이다.

이를 방지하고 최소화하려면 우선 현행 통신비밀보호법과 전기통신사업법의 통신비밀조항 등을 개정해야 한다. 특히 긴급한 사정이 있을 경우 법원의 허가 없이 감청하고 48시간 내에 허가를 받으면 된다는 통신비밀보호법의 긴급감청 조항은 불법감청을 사실상 방치하는 결과를 빚고 있다. 지난해 여야는 이를 개정키로 했으나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매듭을 지어야 한다. 국내 인터넷 인구만도 500만에 이른 때에 PC통신 등에 대한 불법열람을 더이상 방관해서는 안된다.

관련법 개정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사생활과 인권보호야말로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절대적 가치라는 것을 이 정부가 인식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인권 대통령’을 자임하는 김대중대통령 정부에서 수사기관들이 불법감청과 도청을 일삼고 개인의 인터넷 공간을 마구 기웃거려서야 되겠는가. 개혁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이런 문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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