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세원/입다문 베를린의 北대표

  • 입력 1999년 9월 9일 19시 21분


예전에는 주요국 대사관들이 밀집해 ‘외교가(外交街)’로 통했던 독일 구(舊)동베를린의 글링카슈트라세. ‘중화인민공화국 베를린지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리권보호사무소’ 간판이 걸린 우중충한 건물 앞에 8일 오전9시(현지시간)부터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북한 미사일 재발사 문제와 관계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북―미 고위급회담 이틀째 회의가 오전 10시부터 열리기 때문이었다.

베를린의 북한대사관은 독일통일 이전만 해도 북한의 유럽 진출을 위한 관문이었다.

그러나 독일통일 이후 대사관이 없어지면서 91년 1월에 설치된 북한 이익대표부는 예전에 대사관직원 숙소였던 별채로 옮겨졌다.

회의시작 직전 북한 이익대표부 입구에 도착한 미국 대표들의 승용차를 기자들이 에워쌌으나 차는 그냥 안으로 들어갔다. 두 시간 후 오전회의를 마친 미국대표단이 승용차편으로 나왔으나 차를 가로막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끝내 묵묵부답이었다.

북한 이익대표부 참사가 나와 오후 3시에 회의를 재개한다고 말하고는 차량통과를 위해 열었던 문을 다시 잠갔다. 기자들이 온종일 건물 밖에서 신문지를 깔고 앉아 기다리며 들은 말은 겨우 열마디 남짓했다. 북한의 김계관(金桂寬)외무성 부상은 한번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동서 베를린을 갈라놓았던 베를린장벽은 10년전에 무너졌고 그 조각들은 이제 노점상의 인기상품이 됐다.

동베를린 지역은 어디를 가나 공사가 한창이다. 공산주의 시절에 누리지 못했던 ‘개방’을 과시하기 위해서인지 신축건물들은 유리로 벽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냉전과 분단의 상징이었다가 통일독일의 수도로 웅비하는 베를린에서 열리는 북―미회담이라면 문을 활짝 열어젖혀야 하지 않을까.

김세원〈파리특파원〉clai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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