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은 대개 주 초에 통고하기 마련이다. 사흘이 지나야 상부에 보고하기 때문인데 적어도 목요일이나 금요일 쯤에는 상대방의 타협안이 제시되기 때문이고 주말과 휴일을 넘기고 새로운 주의 초가 되면 벌써 위로부터의 질책이 내려와 있기 때문이다.
그 해 혹독한 겨울날 나는 단식을 시작했다. 책과 서신 검열 문제 때문이었다. 나는 그 전 주부터 소금을 준비하고 방에 있던 식기며 구입 음식물들을 모두 식구통 바깥으로 내놓았다. 컵에다 소금을 조금 타서 마시고는 그 다음 부터는 지하수라는 냉수만 받아 놓고 마셨다. 하루 이틀은 금방 가버린다. 먼저 속을 빨리 비워야 금단 현상이 덜하니까 저녁에는 미지근한 물을 받아 두었다가 비닐에 채워서 준비한 빨대를 꽂아 고무줄로 동여서 관장기를 만들어 뒤로 물을 잔뜩 집어 넣는다. 그러고 누워 있으면 기분이 이상해지고 배가 꿀럭거리기 시작한다. 정 참지못할 정도가 될 때까지 꼼짝않고 있다가 뼁끼통에 가서 쭈그리면 한없이 나온다. 그렇게 서너 차례 하고나면 뱃속이 훨씬 편해지고 먹고 싶다는 욕구도 점점 사라진다. 하루나 이틀 정도까지는 감옥에서의 일상이 못견딜 정도로 지루하고 길게 느껴진다. 문제는 사흘에서 나흘로 넘어가는 단계가 가장 힘들다는 것이다. 옛말에 사흘 굶고 남의 집 담을 뛰어넘지 않는 놈 없다더니 사흘째의 저녁 때 쯤이 되면 온갖 생각과 감각이 먹는데로만 집중되어 있어서 책을 들어도 잘 읽히지가 않는다. 특히 식사 시간이 되어 먼데서부터 식통이 실린 손수레의 삐걱이는 바퀴 소리가 들릴 때부터 청각과 후각은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아니 취장에서 증기로 찌는 구수한 밥 냄새가 너무도 생생하게 전해 온다. 된장국 냄새는 물론이고 그날 무슨 반찬이 나오는지도 냄새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드디어 손수레가 우리 사동의 복도에 이르러 딸그락거리는 식기 소리며 배식을 받느라고 각 방이 웅성거리기 시작하면 일부러 식구통을 꼭 닫아 놓고 돌아앉아 있는다. 옆방에서 웃음소리와 먹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건 아마도 어릴적에 겪었던 아픈 날들의 기억과 같다. 독감이나 배탈이 나서 학교도 못가고 자리에 누워 있노라면 저녁 식탁은 저 아래 마루에 차려지고, 나만 빼놓은 모든 식구들이 둘러앉아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그날 바깥 세상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며 차려진 음식 이야기를 저희끼리 나누면서 입맛을 다시고 꿀꺽이며 마시고 그릇을 수저로 부딪치며 따로 살고 있었다. 식구통이 벌컥 열리고 소지가 무심하게 묻는다.
배식이오!
그만 둬라.
왜, 어디 아파요?
그만 두라니까.
사정없이 식구통이 닫힌다. 손수레의 바퀴 소리가 삐걱이며 멀어져 간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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