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구태 청산 없이 신당 없다

  • 입력 1999년 9월 10일 18시 37분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이 오랜만에 국내정치에 대한 발언을 했다. 김추기경은 어제 한 강연을 통해 “요즘 정당들이 오로지 총선을 의식해 신당 창당 또는 당의 결집에 전력을 쏟고 있다. 그런데 쏟는 정신과 노력, 힘이 나라를 위한 것인지, 당을 위한 것인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어제는 마침 여권의 신당 창당 발기인대회가 열린 날이다. 김추기경의 ‘따끔한 지적’에 대해서는 신당 창당 관계자들은 물론 여야 정치지도자들이 그 의미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정치를 개혁하라는 시대적 사명과 국민의 명령’에 부응하기 위해 신당을 창당한다는 발기취지문에 공감한다. 문제는 그 과정과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우리는 어제 있었던 신당 창당 발기인대회까지의 과정과 내용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기 어렵다.

첫째, 창당발기인대회가 너무 부랴부랴 치러지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창당 취지문을 봐도 새로운 것이 없이 그동안 반복된 ‘DJ구상의 재탕’인 감이다. 발기인대회 하루전에야 발기인들이 인사를 나눌 정도였다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 결과 신당 창당의 상징적 의미를 보여주기보다는 형식적 행사에 그친 느낌이다.

둘째, 발기인의 면면을 보면 그중에는 과연 그들이 새 시대가 요구하는 한 차원 높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당정치를 구현해낼 수 있을지 의문시되는 인사도 포함된 것 같다. 몇몇 인사들의 경우는 ‘겉포장’에 불과해 보인다. 특히 세계적 음악가인 정명훈(鄭明勳)씨의 경우 정씨 자신이나 나라 전체를 위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셋째, 발기인 인선과정에서 여전히 비민주적 구태(舊態)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당내 발기인에 포함된 한영애(韓英愛) 박광태(朴光泰)의원이 그 예다. 두 의원은 지난번 청문회에서 지나친 증인 비호발언 등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은 인물로 여권내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 두 의원이 여당 사무총장도 모르는 사이에 발기인 명단에 올랐고, 당 지도부가 명단에서 빼자고 하는 등 잠시 소동까지 일었다고 한다.

물론 신당의 ‘내용물’은 앞으로 구성될 창당준비위원회를 통해 구체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점에서 아직 신당에 대한 총체적 평가는 이르다. 그러나 발기인대회를 전후로 보인 행태는 국민에게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과 희망을 주기보다는 역시 내년 총선용으로 급조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주었다는 것이 솔직한 우리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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