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은 보통 신문을 앞에서부터 읽는다. 두 기사를 같은 면에 배치했더라면 훨씬 짜임새 있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내용에서도 크게 아쉬운 점이 있다. 재일동포 문제에서 ‘권희로 사건’이 지닌 의미는 실로 막중하다. 그러나 그 사건을 통해 우리 또한 스스로 성장하지 않으면 사건의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고 세상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진보하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권씨에 관한 사실보도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 안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약자들과 우리의 관계는 어떠한가를 자성하는 계기로 삼았어야 했다. 그러나 기자들의 기사에서는 그런 성찰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8일 A7면에 실린 독자 투고에서 이경신씨가 ‘권씨 귀국 계기 외국인 인권 관심을’이라는 제목으로 동남아 출신 외국인 근로자들과 조선족 근로자들에게 한국 사회가 가하는 차별과 억압에 대해 주의를 환기한 짧은 글이야말로 천금의 무게를 느끼게 했다.
김미현은 기사에서 여러 번 상세하게 소개한 대로 참으로 장하고 예쁘고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지난 번 박세리가 귀국했을 때 보았던 무리한 언론계 풍경을 동아일보 지상에서 그대로 되풀이해 보게 돼 안타깝다. 김미현씨에 관한 11일자 기사들을 보자. 종합면인 A5면에 ‘슈퍼 땅콩 김미현 본보 단독인터뷰’와 ‘동아일보 애독자 여러분 성원에 감사드립니다!’라는 김미현의 친필 사인이 크게 실렸는데, 동아일보 독자들에게 감사하는 김미현의 친필 사인은 9일 C1면에도 나왔기에 두번째다. 그리고 스포츠면인 A11면에는 ‘김미현 “피곤해”’라는 제목으로 SBS 최강전 2라운드에서 김미현이 5위로 처진 소식이 나왔다.
요즘 독자들은 어떤 기사가 진정한 값어치가 있는지를 안다. 귀국 직후에 치르게 돼있는 큰 경기를 앞두고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을 굳이 비집고 들어가 대형 인터뷰를 해 김미현의 시간을 빼앗은 신문의 지면에 동시에 실린 김미현이 ‘피곤해서’ 성적이 부진하다는 기사를 보면서 독자들이 어떤 느낌을 갖게 되는지 정녕 모르는가.
반면에 우리 사회가 현재 지닌 색깔이나 문제점을 명쾌하게 적시한 반가운 기사들도 눈에 띄었다. 9일 A21면에 실린 ‘집중 추적 오늘의 이슈’에서 엘리트 공무원들의 공직 이탈사태를 다룬 기사는 여건에 따라 달라지는 세태 변화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7일 A6면에 실린 ‘기자의 눈’에서 ‘박자 안 맞는 캐릭터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유익했다. ‘빨리 빨리’가 한국인을 지칭하는 국제적인 은어가 될만치 성급하게 구는가 하면 때로는 막무가내로 느려서 해가 진 뒤에야 뒤늦게 건초를 말리려드는 한국 사회의 취약점을 아프게 돌아보게 했다.
송우혜(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