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아이들이 읽는 소년 만화가 모험과 활극 등의 역동적 드라마인데 반해 소녀 만화는 주로 연애를 다룬 단순한 줄거리의 만화였다. 그래서 흔히 소녀 만화는 ‘순정(純情) 만화’로도 불렸다. 소녀 만화의 주인공들은 오로지 사랑만을 생각했고, 진실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목숨도 걸었다. 그 때문인지 남성중심 사회의 왜곡된 모습이 투영돼 있다고 페미니스트들이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소녀 만화는 그림 스타일만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뿐, 내용 자체는 소년 만화를 능가하면 했지 절대로 뒤떨어지지 않는다. 최근 완간된 다무라 유미의 ‘바사라(BASARA)’가 대표적 작품이다.
바사라의 무대는 미래 세계. 20세기 말 인류의 문명은 멸망한다. 그리고 수 백년 후 일본은 또 다시 전국 시대에 돌입한다. 힘에 의한 공포정치로 중심부를 지배하는 국왕이 존재하지만, 주변부의 각 지역은 분열돼 약탈과 전쟁을 일삼는다. 여주인공 사라사의 고향 사람들은 국왕의 막내 아들 ‘적왕’에게 몰살당한다. 쌍둥이 오빠인 타타라마저 살해당한다. 사라사는 살아 남은 동지들과 함께 적왕을 물리치고 평화를 되찾으려 한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계기로 사라사는 적왕을 만난다. 둘은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바사라’의 주제는 두 사람의 사랑 얘기가 아니다. 거듭되는 난세와 전쟁 속에서 사라사가 고민하는 내용들이다. ‘권력, 전쟁, 국가, 이상적 정치체제란 과연 무엇인가?’ 이런 물음과 그에 대한 대답이 전 25권에 이르는 방대한 줄거리 속에 녹아 있다. 한 마디로 정치학 원론을 방불케하는 심오한 사상으로 무장한 소녀 만화. 소년 소녀는 물론, 청소년 성인들까지 매료되기에 충분한 만화다.
김지룡〈신세대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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