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에 의한 불법감청과 감청남용 문제는 작년 정기국회에서도 핫이슈로 등장했던 사안이다. 당시 정부는 관련부처 장관들을 내세워 감청을 줄이겠다는 담화문을 발표하고 광고까지 내는 등 금세 달라질 것처럼 이른바 ‘대(對)국민 홍보’를 했다. 1년전의 그같은 국민과의 약속이 왜 아직도 ‘검토중’이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정부가 매사 말만 앞세운다는 지적을 받아 마땅하다. 어제 그나마 ‘대책 아닌 대책’을 발표한 것조차 대통령의 대책마련 지시가 있고 나서의 일이다.
국회는 또 어떤가. 작년 정기국회에서 불법감청 문제가 제기된 뒤 각 정당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마련한다고 법석을 떨었다. 이 개정안들은 해가 바뀐 뒤에도 몇차례의 임시국회가 열리고 다시 정기국회가 열린 이 마당까지 잠만 자고 있다. 관련법과 수사관행상의 문제점, 개선방향 등에 대해서는 이미 사회적 공감대가 대체로 형성됐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가령 법원 영장 없이 가능한 ‘긴급감청’시간(48시간)의 단축, 감청대상 범죄(130여개)의 대폭 축소, 휴대전화 통화내역조회와 E메일 열람에 대한 엄격한 규제 등이 대표적 예다. 대책마련에 시간이 걸릴 이유가 없다.
수사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범죄는 거의 감청할 수 있게 돼있는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이름과 달리 실제로는 ‘통신비밀침해법’이나 다름없다. 국민의 사생활비밀 보호보다는 수사기관의 편의 위주로 돼있다. 게다가 올들어 수사기관들이 유선전화 감청장비를 경찰 163대 등 모두 175대나 새로 구입했다는 보도다. 경찰관이 사적(私的) 부탁을 받고 특정인의 통화내역을 빼내 주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래 가지고는 국민이 전화 한 통화도 마음놓고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가와 정부의 존재이유에 대해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수사기관이 보다 손쉬운 수사를 위해 감청 등에 의존하려는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본란이 누차 지적한 대로 ‘빅 브러더 공화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정부의 특단의 실천의지가 요망된다. 개인간의 도청이 횡행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수사기관들의 마구잡이 감청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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