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세상읽기]主思派를 생각한다

  • 입력 1999년 9월 13일 19시 32분


지난주 국가정보원은 ‘민혁당 간첩사건’을 발표했다. 한때 ‘자생적 주사파의 원조’였던 인물로서 최근에는 갑자기 ‘북한혁명론’을 들고 나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김영환씨가 반잠수정을 타고 북한을 오가면서 간첩활동을 했다니 어이없는 일이다. 국정원의 발표가 틀림없는 사실인지는 재판이 끝나봐야 알겠지만….

그야 어찌됐든 지난날 대학가를 휩쓸었던 젊은 지식인들의 ‘친북적 경향’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래야 이것이 앞으로도 심각한 문제로 남을 것인지 여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80년대 초반 주사파 출현의 심리적 배경은 민족주의적 ‘체제 열등감’이다. 엄청난 과장이 있기는 하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립주체가 항일 무장투쟁 경력을 가진 민족주의자들이고 친일 반역자들을 철저하게 처단했다는 것은 널리 인정된 사실이다.

반면 ‘대한민국’에서는 반민특위가 권력에 의해 유린당했고 쿠데타로 헌정질서를 뒤엎은 일본군 출신 장군이 18년 동안이나 권좌에 있었다. 70년대 중반 남의 경제력이 처음으로 북을 앞서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별 호소력이 없었다.

그 이전에도 언제나 우리 정부는 북한이 거지 나라인 것처럼 선전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면에서도 남과 북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통일주체국민회의니 선거인단이니 하는 추종자들을 모아 놓고 거의 100% 찬성표를 찍게 만든 박정희―전두환식의 ‘체육관 민주주의’나 단일 후보에게 100% 찬성표를 찍게 한 김일성식의 ‘인민민주주의’나 오십보백보였던 것이다.

‘주사파’는 또한 극단적인 좌절감의 산물이다. 전두환 일파가 저지른 80년 광주의 대학살과 무식한 철권통치를 증오하고 말로만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한 미국 정부에 배신감을 느낀 학생들이 휴전선 너머 실체적 권력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일단 ‘주체의 지도력’에 복속한 학생들은 ‘식민지반봉건사회론’과 ‘인민민주주의혁명론’, ‘주체의 수령론’과 ‘품성론’에 이르기까지 북의 이데올로기 ‘교과서’를 비판 없이 수용했다.

그래서 북이 송출하는 ‘민민전 방송 학습’이 유행하고 김정일의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논문 같지도 않은 논문이 ‘지하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그로부터 15년,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인민의 먹을거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북한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우수한 국민경제를 만들었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 군사독재를 마감하고 절차적 정통성을 확보한 민주정부를 세웠다. 항일과 친일의 화해할 수 없는 길을 걸었던 세대는 이미 현실의 무대를 떠났다. 이제 ‘체제 열등감’의 근거는 사라졌다.

병은 감추지 말고 자랑해야 쉽게 고칠 수 있다. 정치적 존재 근거를 상실한 ‘주사파’가 아직도 남아 있다면 그건 순전히 그들을 배척하고 고립시켜 지하로 몰아넣은 우리 사회의 편협함 때문이다. 사상은 그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도 남이 나서서 ‘발본색원(拔本塞源)’하거나 ‘교정(矯正)’해 줄 수 없다. 세상의 여러 얼굴과 만나고 전혀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들과 토론함으로써 스스로 수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선 그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주어 광장으로 불러내자. 그래도 주사파를 자처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때서야 우리는 이것이 소멸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유시민(시사평론가) denkmal@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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