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영신씨와 신당

  • 입력 1999년 9월 14일 18시 38분


여권이 추진중인 신당의 창당발기인 공동대표인 장영신(張英信)애경그룹회장이 야당인 한나라당 중앙당 후원회의 현직 부회장이라는 사실은 그것이 적법하냐, 아니냐를 떠나 우리 정치 현실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아직 신당이 정식으로 출범하지 않은 상태이고 장씨가 한나라당 당원도 아닌 만큼 장씨의 겸직은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고 한다. 또 장씨도 곧 한나라당 후원회 부회장 자리를 내놓겠다고 했으니 어찌보면 웃어넘길 해프닝 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냥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다. 국민회의측은 이번 장씨의 문제에 대해 “구 여권하에서 기업인의 여당 후원회 참여는 소신과는 무관한 관행이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장씨가 신당 발기인 공동대표를 맡은 것도 현여권이 신당의 구심체이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의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신당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의문을 낳는다.

대의(代議)민주주의의 핵심이라 할 정당, 정당정치는 책임성과 정당성 안정성을 그 기반으로 한다. 우리의 현실정치가 총체적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우리 정당이 이와 같은 기본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당은 정권에 따라, 또는 선거가 있을 때마다 없어지거나 새로 생겨나고 혹은 새이름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그런 정당은 안정적일 수도 없고 책임성을 갖기도 어렵다. 유권자와 당원의 뜻보다는 지역을 볼모로 한 1인 보스체제는 정당성 면에서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를 극복할 새로운 정당의 출현이 요구되고 여권은 바로 그런 신당을 창당한다고 발기(發起)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정당은 유권자인 국민과 당원의 뜻에 따라 만들어져야 한다. 신당의 경우 각계의 발기인으로 창당한다고 하나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밑에서부터’가 아니라 ‘위에서부터’ ‘급조된 형식’이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장영신씨의 경우도 바로 그런 과정에서 빚어진 ‘난센스’로 보여진다. 국민회의내 기득권자들의 물갈이를 위해 신당 창당이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과연 앞으로의 과정이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집권여당의 현 지배구조로 보아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장영신씨의 경우 하루 빨리 자신의 신분을 정리하고 그동안 한나라당을 후원하다가 신당 발기인으로 돌아서게 된 정치적 입장이나 소신을 밝혀야 한다. 평당원도 아닌 창당발기인의 공동대표라면 그 정도의 절차와 논리는 갖추는 게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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