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페리보고서’는 북한의 협력이나 호응을 전제로 하고 있다. 5월 윌리엄 페리 대북(對北)정책조정관의 평양 방문과 이번 베를린 북―미(北―美)고위급회담을 통해 그같은 북한측의 협력이나 호응 의향이 어느 정도 확인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북―미협상은 하루아침에 결말이 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북한측의 태도변화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그럼에도 15일 공개된 ‘페리보고서’에는 북한이 ‘엉뚱하게’ 나올 경우의 대응책이 보이지 않는다. 연초에 언급되던 이른바 정책 한계선(레드라인)에 대해서는 보고서의 비공개 부분에 포함돼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어떻든 북한측의 ‘일탈’에 대한 방안은 확고히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우리로서는 ‘페리보고서’가 아무리 북―미관계를 핵심으로 삼았다고 해도 남북한 문제해결에 절대적으로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보고서도 남북기본합의서 이행과 이산가족문제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현재의 남북교착상태를 타개할 만한 적극적인 방안이나 의지가 우리의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 북한측이 북―미협상과정에서 일방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끌고 갈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더구나 94년 제네바회담 때처럼 미국의 요구에 의해 우리가 또다시 대북(對北)부담이나 지원을 해야할 상황이 온다면 선뜻 국민의 동의를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북―미 협상에 남북한문제에 대한 우리의 목소리가 직접 반영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그같은 국민의 동의도 얻을 수 있다.
한미일(韓美日)3국의 공조와 중국 등 우방의 협력문제도 더욱 신중히 다뤄야 할 사안이다.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문제가 하루 빨리 종결되기를 바라는 일본은 상당한 시차를 두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페리보고서’의 계획에 내심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미국의회의 대북 강경 목소리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우리는 한미일 3국의 공조를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 역시 신경을 써야 할 처지다.
‘페리보고서’가 한반도의 냉전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길잡이 지도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남북한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천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남북관계의 진전과 북―미관계 진전이 병행돼야 ‘페리보고서’도 기대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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