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신화/탈북자들에 '햇볕'은 언제쯤…

  • 입력 1999년 9월 16일 18시 22분


“탈북자는 중국과 북한이 처리할 문제로 한국이 이를 거론하는 것은 신개입주의”라는 우다웨이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에 항의하는 시위가 국내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잇따라 열리고 있다. 우대사는 홍순영 외교통상부 장관이 3월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탈북자는 넓은 의미의 난민’이므로 국제 인권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밝힌 한국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반박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중국정부의 새로운 입장이 아니다. 중국은 이탈주민이나 범법자의 상호 송환을 명시한 60년 조중(朝中)국경조약에 의거해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해 왔다. 중국은 1월 한국정부의 탈북자송환에 대한 관심에 불만을 표명한 바 있다.

▼ 최대 40만명 추정

기근을 피해 중국 국경근처 도시로 탈출한 북한주민은 최소 몇 천명에서 최대 30만∼4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대부분 자연재해 또는 경제적 이유로 자국을 떠난 유랑민으로 취급돼 국제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행 국제법상 전쟁이나 박해 등 정치적 이유로 모국을 떠난 사람만이 합법적 난민으로 국제사회의 보호나 원조를 받을 수 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 탈북자 문제에 대해 방관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탈북자에게 난민지위를 부여하면 비정치적 난민에게 난민지위를 부여하는 선례를 만들게 됨으로써 세계 도처에서 어려움을 겪는 10억여명의 환경 및 경제유민들에 대한 난민지위 부여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 냉전이후 증가 일로에 있는 정치 난민(5000만여명)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유엔으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설혹 UNHCR가 탈북자들에게 난민지위를 부여하더라도 탈북자를 불법체류자로 규정하는 중국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중국에 체류하고 있는 탈북자 보호의 실효성은 적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기근으로 인한 탈북자의 탈북동기에 정치적 요인이 내재돼 있다는 점이다. ‘단순 유민’이 순수한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라면 탈북자는 정치적 요소와 환경변화의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생긴 ‘복합 유민’으로 봐야 한다. 그러므로 탈북자들도 84년 에티오피아 기근 피해자들처럼 국제사회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북한으로 강제 송환당한 탈북자들은 북한정부에 의해 정치적 박해를 받고 있다. 이들 중 운좋게 다시 도망나올 수 있는 사람은 국제사회가 공인하는 난민이 될 수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 국제문제 공론화 필요

최근 국내 몇몇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중국내 탈북자 현황을 조사해 발표하고 이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중국과 북한정부를 자극해 오히려 탈북자 단속만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탈북자들이 제삼국에 머무를 때 난민여부를 가리는 것보다 우선 식량과 피난처를 제공함으로써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 시급하다.

필사적으로 국경을 넘는 탈북자가 겪는 공포심이나 고통이 인종학살을 피해 국경을 넘는 알바니아계 코소보인이나 동티모르인들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 탈북자 문제를 국제공론화해야 한다. 그리하여 UNHCR나 유관국가들로 하여금 탈북자중 망명을 원하는 자들에게 적어도 망명 신청의 기회는 부여해 달라고 촉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탈북자 문제에 대한 NGO 및 학계 등의 산발적 노력을 통합하고 국제사회와 협력해 중국의 강경정책을 완화시키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탈북자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대부분 국내 정착 탈북자만을 대상으로 했다. 물론 중국정부가 탈북자를 불법 체류자로 규정하고 있어 공개지원이 어려웠고 대북 포용정책의 맥락에서 북한 정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취지 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동포인 탈북자들의 보호에 계속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한다면 과연 무엇을, 누구를 위한 대북 포용정책인가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대북 정책의 궁극적 목적이 그곳에 사는 북한주민들을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탈북자도 포함돼야 한다.

이신화(고려대 국제대학원 연구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