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책을 그냥 무턱대고 읽다 보면 박탈감이 더욱 심해진다. 나는 추위 때문에 이불을 코 끝에까지 올려서 덮고 눈을 감고는 나의 요리를 시작하곤 했다. 입맛은 온통 추억거리로 가득찬다. 먼저는 가족, 그리고 내 발로 떠돌아다녔던 세상의 여러 마을과 길목들, 그리고 만난 사람들이 떠오른다.
콩나물밥은 된장국과 함께 먹어야 맛이 있었지. 돌아가신 아버지가 휴일에 즐기던 음식이다. 일요일 점심 무렵이 되면 아버지는 처음 그러는 것처럼 오늘은 콩나물밥이나 먹었으면 좋겠구나, 하고 중얼거린다.
그래 콩나물밥을 해먹자. 전쟁 직후라 작은 시루에 광목을 펴고 콩을 그득히 담아 부엌에서 뒷마당으로 나가는 좁은 통로에 있던 찬광 아래 어두운 공간에 놓아두고 콩나물을 길러 먹었다. 어머니가 덮어 놓은 짙은색 보자기를 열고 조리로 물을 주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 콩나물이 떡잎이 되어 올라와 새끼 손가락만한 크기로 통통해졌을 때가 여리고 싱싱한 때여서 얼른 뜯는다. 여릴 때에는 실뿌리도 그리 길지 않고 노란 대가리도 고소하고 여물다. 콩나물의 꽁지를 손톱 끝으로 떼어낼 때에는 나도 어머니와 함께 따스한 부뚜막에 앉아 바가지와 양푼을 놓고 뿌리를 끊어내어서 분리하여 둔다. 한편으론 냄비에 물을 담아 팔팔 끓여 머리와 내장을 뺀 중멸치를 한 줌 넣어 국물을 마련한다. 나중에 형편이 나아져서는 기름기 없는 사태 쇠고기로 국물을 내기도 했는데. 그리고 따로 고기를 조금 남겼다가 참기름과 갖은 양념에 볶아 두기도 했다. 하여튼 쌀을 솥 안에 안칠 적에는 쌀 한 켜 콩나물 한 켜씩 차례로 앉히고 고기가 있을 젠 고기도 넣고 맛을 낸 국물로 그냥 밥을 지을 때 보다는 좀 모자라게 밥물을 부어 안친다.
그리고 콩나물 밥에 함께 넣어 비벼 먹을 양념장을 준비한다. 청장에 참기름을 넣고, 파를 잘게 썰어 넣고, 고춧가루 약간, 마늘 다진 것 약간, 후춧가루 조금 뿌리고, 통깨 조금을 뿌려 둔다.
이제는 밥과 같이 먹을 된장국 차례다. 콩나물 밥에는 어쩐지 조개를 넣어 끓인 된장국이 꼭 알맞다. 재첩 조개가 당시에는 너무도 흔해서 밤섬이나 양말산 넘어 한강에만 나가도 아이들이 한 소쿠리씩 잡을 수가 있었지. 당인리 맞은편 고운 모래가 깔린 강변에 나가면 두 손가락으로 더듬든가 아니면 발가락으로 고물고물 움직이며 걷기만 해도 어른 손톱만한 예쁜 조개가 한 줌씩 나왔다. 재첩은 가져오자마자 소금물에 넣어 해감시킨 뒤에 끓는 물에 한번 넣었다가 물을 버리고 재벌로 포옥 끓인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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