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224)

  • 입력 1999년 9월 17일 17시 28분


조개가 입을 열고 국물이 뽀얗게 나오면 된장도 겉이 아닌 속의 누렇고 부드러운 것으로 퍼내어 채에 걸러 국에 풀어주고 작고 모나게 썰어둔 두부 조금과 파를 넣으면 된다. 맨 나중에 쑥갓을 여린 놈으로 몇줄기 넣으면 향내가 난다. 콩나물 밥을 풀 때에는 주걱으로 잘 섞어주는데 위에서 흩뿌리듯 해서 그릇에 담아야지 아니면 멀쩍하게 눌려서 맛이 없어진다. 양념장을 숱가락 끝에다 조금씩 떠서 귀퉁이부터 한 두어 숱갈 분량만큼 비벼가면서 먹어야 한다.

수제비도 많이 먹던 무렵이었다. 악수표 밀가루라고 하여 방패 모양의 미국 깃발에 나오는 별과 줄 무늬 표식 아래 악수하고 있는 두 사람의 손이 찍혀진 하얀 포대가 동사무소나 시장에 흘러나와 있었다. 시골에 피난 나가 있을 때에는 절구에다 빻은 검은 통밀이 조금씩 생겨서 어머니가 소금 넣고 반죽해서 손으로 한줌 꾹 쥐어서는 무쇠 솥에다 쪄서 개떡을 만들어 주었다. 반죽할 때 떼어낸 통밀 조각을 씹으면 껌처럼 쫀득쫀득하여 조선 껌이라고 그랬다. 시커먼 개떡에는 어머니의 손자국이 무슨 연장의 손잡이처럼 오목하게 남아 있곤 했다. 거기다 검은 콩이라도 드문드문 박아 주면 설에 먹던 시루떡 같았다. 그러니 하얀 서양 밀가루는 반죽을 하여도 너무나 고와서 손을 대어 떼어내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그때에 어머니가 해주던 수제비는 그냥 왕멸치 몇 마리 맹물에 넣고 끓여서 간장으로 맛을 내고 반죽을 뚝뚝 뜯어 넣은 것이 고작이었다. 겨울에 김장 김치가 있으면 김치나 잘게 썰어 넣고 함께 끓였다.

이젠 수제비를 먹어 볼까나. 밀가루에 감자 전분을 섞어서 물을 조금씩 부어 가며 질척해지기 전까지 고루 섞어 준다. 거기에 참기름을 넣고 달걀을 깨어 노른자만 들어내어 반죽에 넣는다. 치대어서 부드럽게 반죽이 되면 덩어리째로 젖은 헝겊에 싸서 일단 냉장고에 넣어 둔다. 참기름을 넣어야 나중에 국물 안으로 떼어낼 때 반죽이 손에 붙지도 않고 익으면 부드럽고 고소한 향이 난다. 달걀 노른자를 넣으면 밀가루 씹는 맛이 쫀득해진다. 젖은 헝겊에 싸두어야 촉촉한 습기가 유지되고 냉장고에 넣어두면 찰기가 더욱 생겨난다.

수제비 국물은 역시 멸치가 제격이지. 멸치를 마늘과 함께 망에 넣어 끓여서 건지고 청장을 넣어 간을 한다. 심심하면 고추장을 한 숫가락쯤 넣으면 얼큰하고 깊은 맛이 난다. 감자를 툭툭 썰고 호박은 가늘지 않게 채썰어 두었다가 감자는 미리 넣어 푹 익히고 호박은 수제비를 떼어 두고나서 넣는다. 파를 어슷 썰어서 제일 나중에 넣는다. 수제비를 떠먹으면서 가끔씩 국물에 푹 익은 감자를 건져 먹는 재미가 있고 약간 살캉한 호박 가닥이 씹히는 맛도 괜찮다. 크지않은 손가락 마디만한 총각김치를 곁들이거나 푸른 빛이 도는 배추김치 겉잎을 손으로 찢어 먹어도 좋겠지.

고등학교 때인가 이제는 진작에 죽은 광길이네 시골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에는 기차도 몇 십리 밖에 닿는 산골 마을이라서 구불구불한 강변 오솔길을 따라서 한나절을 걸어 들어가야 했다. 그때도 겨울이었다. 강이랄 것도 없는 폭 좁은 내가 얼어붙어 있었고 마른 풀과 나무에는 잔설이 덮여 있었다. 그 집에서 첫 저녁을 먹었지.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동네라 광길이 할아버지가 보통 때는 쓰지도 않던 유리 호야가 달린 남포불을 밝혔다. 그 저녁밥 때에 내가 기억하는 건 무우밥과 청국장이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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