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가을 날 오후였다. 웬 꽹과리 소리고, 웬 북소리일까 싶었다. 나는 그 때 시내 화랑에서 세번째 전람회를 막 끝낸 한 화가와 함께 동행해 그의 그림이 다시 걸리게 된 어떤 ‘문화사랑방’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어떤 분이 자신의 회갑잔치 대신 지었다는 문화사랑방은 보육원 바로 옆에 위치한 지붕이 낮은, 교실 한 칸 정도의 검박한 조립식 건물이었다.
군의관 시절부터 인연을 가진 이래 평생에 걸쳐 그 곳 보육원생들에 대한 사랑을 남몰래 실천한 그 분은 글 잘 쓰고, 산 좋아하는 정신과 의사였다. 한국인의 원형(原形) 추구로서의 돌부처에 대한 관심, 네팔인들에 대한 의료봉사도 그가 평생에 걸쳐 소문없이 진행해온 일이었다.
필자와 동행한 화가는 그 분과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전시회가 끝나면 그 그림들을 문화사랑방 공간을 통해 보육원 원생들에게 보여달라”는 그의 요구에 흔쾌히 응했고, 그러니까 그 날은 화가와 원생들과의 만남이 있는 날이었다. 그동안 그림을 잘 보았다는 답례로 이제 화가 선생님을 모시고, 원생들이 자신들이 보여줄 수 있는 재주로 인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재주가 바로 원생들의 사물놀이 공연이었다.
사물놀이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그 전통악기에 특별히 개인적인 반감만 없다면, 조선 사람으로서 그 소리에 몸을 맡기기로 작정만 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흥이 나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소리가 아닌가 싶다.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10명 안팎의 원생들은 악기를 들고 보육원 건물에서 사랑방으로 나타날 때만 해도 수줍어서 얼굴이 빨개지더니 연주가 시작되자 몰두하는 모습이 여간 진지하지 않았다. 수준도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아주 흥겹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필자를 연주보다 더 감동시킨 것은 사물놀이가 끝난 뒤 그들을 김덕수 사물놀이패한테까지 보내면서 마음을 열어준 그 분의 말이었다.
“이 아이들이 미소를 지을 줄 알고, 사람을 보면 인사도 할 수 있게 되는 데 꼬박 3년이 걸렸어요, 3년이! 예술의 힘은 놀라워요!”
사랑의 이름으로 명절이나 무슨 때가 되어 라면 박스나 잔뜩 들고와 보여준 그동안의 어떤 관심도 대부분 일회적이었고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겉치레였다. 그래서 또 한번 버림받을 게 틀림없다는 불신과 분노로 가득찬 그 아이들의 마음을 사물놀이 소리처럼 시원하게 뚫는 데에 그 분이 사용한 매개가 바로 예술이었다.
물론 긴 인내도 작용했겠지만 예술은 그들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깨우쳐 준 것이었다. 나 역시 불신을 녹이고 자부심을 키우는 ‘예술의 힘’에 대해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게 됐다.
일영 근처의 K보육원에 가면 시인과 보육원 아이들이 시낭송을 하고, 사진작가 선생님과 사진 이야기를 하고, 화가와 같이 그림 그리고 합평(合評)을 하는 문화사랑방이 있다.
최성각(소설가·「풀씨」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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