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도청문제 더 늦기 전에…

  • 입력 1999년 9월 17일 18시 46분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온갖 도청(盜聽)사례가 많다 해도 이런 정도일 줄은 몰랐다. 민간인끼리의 도청을 넘어 건설업자 등이 이렇게 교묘한 방법까지 동원해 관청을 도청하는 사례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수사기관이나 군정보기관이 범죄증거 또는 군사관련정보 수집을 위해 행하던 ‘남의 말 엿듣기’가 이제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돼 있는 느낌이다. 국가정보원이 경기지역 공무원 보안교육때 밝힌 사례들은 믿기 어렵지만 우리의 현실이다.

구청장 의자 밑에서 도청장치가 발견되고 건설업자들이 회의실 스피커를 도청해 입찰정보를 빼내는가 하면 영전과 승진축하 화분, 선물로 받은 만년필 전화카드 전자계산기에까지 도청장치를 하는 판이라고 국정원측이 밝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업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다른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등에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사례가 아닌가 여겨진다. 극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 군부대 등도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유선전화 휴대전화 E메일 등에 대한 수사기관의 광범위한 감청 등의 문제로 가뜩이나 불안한 상황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도대체 안심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 같다. 경쟁기업간의 도청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도청될 것으로 알고 의도적으로 역정보를 흘리는 일까지 있다고 하니 이건 경쟁이 아니라 전쟁이다. 기업체 회장이나 사장실 정책부서 등은 정기 부정기적으로 도청장치 유무를 점검하지 않으면 언제 어떤 피해를 볼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아무리 기업간 정보전쟁이 치열하다 하더라도 인간사회에는 지켜야 할 원칙이 있고 룰이 있다. 합법적이고 정당한 수단과 방법으로 선의의 경쟁을 해야 인간사회라 할 수 있다. 불법감청과 도청이 횡행하는 감시사회에서는 인간성과 인권이 말살된다.

우리 사회가 불법감청과 도청이 만연하는 세상이 된데는 1차적으로 정부당국에 책임이 있다. 정부기관의 마구잡이 불법적 행태에서 민간인들이 영향받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가 불법감청과 도청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야 할 때다.

아울러 민간의 도청행태를 뿌리뽑을 다각적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이 문제를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도청사회’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국민의 정부’가 우선적으로 할 일은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는, 전화라도 마음놓고 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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