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왕계문/차이나타운이 없는 나라

  • 입력 1999년 9월 18일 19시 04분


한국 거주 화교(華僑)들은 반세기 동안 대부분 음식점을 경영하며 이 땅에 자장면 문화를 퍼뜨렸다. 화교들은 자장면과 짬뽕을 통해 한국인들과 깊은 우정을 쌓으며 단출했던 한국인의 식생활에 혁명을 일으켜 맛의 즐거움을 선사했다고 자부한다.

물론 서운한 것으로 따지자면 화교들도 참으로 할말이 많다. 화교에 대한 한국인들의 배타적 감정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심한 편이다. 화교들은 차별정책에 견디다 못해 정든 한국땅을 등지고 미국 캐나다 등지로 떠나기 시작했다.

70년대 초 박정희(朴正熙)대통령 시절에 돈 많은 화교들로 번창하던 서울 북창동 플라자 호텔 뒤 차이나타운이 사라졌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차이나타운을 못마땅하게 여긴 집권자들은 이곳을 재개발지구로 지정했다. 재개발을 부담할 재정능력이 없는 화교들은 대만 정부의 방관 속에 눈물을 뿌리며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서대문구 연희동 지역으로 이주했다.

이로써 차이나타운은 한국에서 영원히 모습을 감추었다. 세계 각국에 가보면 번성하는 차이나타운이 관광명소로 자리잡아 그 나라 관광수입 증대에 크게 기여한다. 세계 어느나라에 가더라도 볼 수 있는 차이나타운이 한국에 하나도 없다는 것은 국제화시대에 한국이 그만큼 배타적인 나라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한국 정부는 최근 인천 선린동과 서울 뚝섬 등지에 차이나타운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곳보다는 화교들이 이미 많이 자리를 잡은 서울 연희동 화교학교 부근에 차이나타운을 건설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한국 화교들은 경제력이 없어 한국 정부의 재정지원 없이는 차이나타운 건설이 성공하기 어렵다. 또 산업자원부가 인가한 한국화교경제인협회는 비경제인들이 구성한 조직으로 화교경제인 대표성이 없다.

31년간 옥고를 치른 권희로씨의 노쇠한 모습은 마음을 아프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모습은 일본의 외국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의 상징이다. 화교들은 권희로씨를 보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화교들도 한국에서 견디기 어려운 차별을 받으며 속으로 숱한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권희로씨가 없었을 뿐이다.

다행히 근년에 이르러 화교들에 대한 법적 제도적 불이익이 많이 줄었다. 외국인 토지소유 제한이 해제돼 부동산도 소유할 수 있게 됐다. 거주지 등록 기간이 3년에서 5년으로 연장됐다. 여기서 나아가 간절한 소망은 화교들에게 거주지 등록의무를 없애고 시민권을 부여해 경제 건설에 동참할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는 것이다. 화교들은 아직도 높은 은행대출금리, 이동전화가입불가, 회사 취직 차별 등을 받고 있다. 공무원 임용의 문호를 화교들에게도 개방해 중국 대만 관계 업무에서 활용하면 한국 국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화교들의 수난은 한중 수교, 한 대만 단교로 더욱 깊어졌다. 중국정부는 한국 화교들의 권익보호는 소홀히 하면서 대만 고립정책에만 치중하고 있다. 대만 정부(중화민국)는 단교후 화교 권익 보호에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역부족이어서 한국화교의 권익 보호에 무기력하다. 대만 여권으로는 세계 여행에 제약이 많아한국 화교는 이래저래 양안(兩岸) 관계의 최대 피해자이다.

나는 5세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한국에 와 한국에서 자라고 사업을 하면서 자식을 키웠다. 나는 누구보다도 한국을 사랑한다.

왕계문(한화천지 이사·화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