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하성근/물가가 걱정된다

  • 입력 1999년 9월 18일 19시 04분


경기장에서 앞에 앉아 있던 관중이 일어서면 연쇄적으로 그 뒤에 있는 관중이 일어설 수밖에 없게 된다. 몇 사람이 일어섬으로 해서 결국에는 경기장의 모든 관중이 힘들게 서서 경기를 관람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요금인상 줄줄이 대기▼

경제학자들은 인플레 진행과정과 효과를 이러한 경기장의 관중 행태에 비유해 설명하기도 한다. 즉 몇몇 주요 재화의 선발적 가격인상은 앞 좌석의 관중이 일어서는 것과 같다. 이는 종국적으로 전반적인 가격 상승을 초래해 모두가 힘들고 비효율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한국 경제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처했지만 다행히 인플레에 관한 한 상당히 편안한 상태에 있었다. 지난 상반기 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6%로 믿기 어려울 정도의 물가 안정을 누렸다. 이는 주로 국제 원자재가격의 하락, 환율의 평가절상, 그리고 경기 침체에 따른 임금과 금리의 안정 등에 기인했다. 그러나 하반기에 들어서 이러한 우호적인 상황이 크게 흔들리는 기미가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특히 국제원유가를 비롯해 수입원료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전화료 대중교통요금 의료보험수가 등 공공요금인상도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8월 들어서는 태풍과 집중호우로 농축산물 가격이 6.8%나 급등했다.

여기에 이번 추석명절 기간에는 급격한 경기회복과 일부 계층의 자본소득 증가에 힘입어 주요상품의 가격인상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 백화점은 물론 재래시장에서까지 물건 배달 인력이 달린다는 보도가 나온다.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상품 판매자들은 이번 추석 특수에서 올린 가격을 추석 후 다시 인하시킬 유인이 크게 약화된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번 명절을 지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돈이 확연하게 감자(減資)당하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고 이에 따라 그들의 인플레 기대심리를 다시 한번 높여야 할 이유를 확인할 것이다.

물가불안을 염려하면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은 시중에 많은 유동성이 떠돌고 있으며 유동성 보유주체들이 그 유동성의 가치안정에 확신을 하지 못하고 불안해 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금융기관 예금은 크게 단기화하고 있으며 지난해 마이너스 7% 성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통화 증가율은 통화의 측정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적게는 14%, 많게는 30%의 높은 수준을 보여 왔다. 그리고 이러한 높은 통화증가율이 유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화당국이 환수하고 있는 통화량은 한국은행이 직접 발행한 화폐(본원통화)의 2.5배에 해당하는 50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중앙은행은 이미 본연의 의무인 통화량 관리를 정상적으로 수행하는데 매우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더욱이 앞으로 대우사태 해결을 위해 통화당국은 추가적인 통화증발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고 있다.

▼경제안정 巨視대책을▼

이러한 유동성 과잉과 이에 따른 통화가치 하락의 기대심리가 증폭되는 상황에서 몇몇 공급측면의 가격인상 요인이나 계절적 가격상승 요인이 일으키는 인플레 파급효과는 예상외로 커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정부당국은 추석 성수품 확대공급과 같은 대증요법적인 물가대책에 그치지 말고 재정 통화 금리정책을 포함한 보다 종합적인 거시안정 대책을 조속히 수립해 시행해야 한다.

특히 정책당국은 개방경제하에서 통화량 확대가 물가나 여타 자산가격에 미치는 영향 못지않게 수입증대와 이에 따른 외화유출에 미치는 효과를 중시하면서 경제안정화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미 정부당국도 공식적으로 내년에는 인플레 압력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이상 하루 속히 그 인플레 압력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완화시켜 나아갈 것인지를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제시가 확실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각 경제주체의 인플레 기대심리는 하루가 다르게 급속하게 확산될 것이며 이는 결국 모든 사람이 일어서 있는 고난스러운 상황을 앞당겨 초래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최대 현안인 우리 경제의 회생과 부문간 불균형해소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새삼스레 지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성근(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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