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공간의 대화는 익명(匿名)으로 이루어진다. 얼굴도 실체도 드러내지 않고 문자만 띄운다. 한참 캐들어 가면 가입자 ID가 나올 뿐이다. 그런 ‘얼굴 가리고’ 설치는 사이버 성폭력 때문에 울상짓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케이스에서 경악할 만한 일은 남북간 교전 같은 ‘실제 상황’조차도 익명을 빌린 유언비어에 휘둘릴 수 있음을 보여준 점이다. 급박한 총격 포격 등은 정상 정보보다 유언비어의 위력을 한없이 증폭시킨다고 볼 때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서해교전은 옷로비 사건 등으로 위기에 처한 정권의 지시 아래 군당국이 강력 대응함으로 써 일어났고, 이를 언론이 장기간 다루게 해 위기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이런 내용을 여러차례 띄웠다는 얘기다. 나아가 법관이라는 책임있는 직업인이 경솔한 추측을 퍼뜨린 점도 놀랍기만 하다. 또 그는 통신내용이 문제가 되자 한때 “ID를 도용당했다”고 변명했던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인류에게 불의 발견보다도 더 의미있는 것으로 기록되리라는 예측이 있다. 빛의 속도로 정보를 교환하고 무한 용량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술. 그런 꿈같은 일들이 실현되고 있는 사이버 시대다. 그러나 윤리와 책임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이버 공간은 쓰레기 정보와 음란물 범죄 유언비어로 뒤덮일 수 있다. 불법정보 유해정보가 판치지 않는, 삶의 질을 드높이는 정보와 대화의 마당으로 사이버 공간을 가꾸는 일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김충식<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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