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여전한 與富野貧

  • 입력 1999년 9월 19일 18시 40분


98년 한해 동안 국민회의가 중앙당 후원회를 통해 모금한 정치자금 총 294억원 가운데 대기업이 낸 액수가 밝혀졌다. ‘주간 동아’가 ‘뉴스플러스’에서 제호를 바꾸면서 낸 첫호 보도에 따르면 LG가 40억원, 삼성이 38억원, 현대 대우 SK그룹이 각각 20억원씩이라는 것이다. 이들을 포함한 10대그룹이 낸 돈이 전체모금액의 61%에 달했다. 또 1억원 이상을 낸 47개 기업의 후원금 총액이 257억원이어서 전체 294억원의 87.7%를 차지했다.

우리는 우선 여기서 한나라당이 같은 기간에 모은 후원금 21억9900만원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액수가 여당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격차를 보면서 세태와 기업의 변하지 않는 속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이를테면 97년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신한국당)은 725억원의 정치자금을 얻어 썼고, 당시 야당이던 국민회의는 180억원을 모았었다. 액수와 시기는 다르지만 정치자금의 여부야빈(與富野貧)이라는 극명한 대조는 비슷한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재벌총수들과의 회합에서 ‘야당에도 마음놓고 정치자금을 주라’고 공언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치자금 납부는 여당 위주이고 야당은 외면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개인후원회 모금액을 들여다보아도 여야 차별은 마찬가지다. 올해 상반기 의원들의 후원금 모금 신고에 따르면 2억원 이상 모은 이(최고는 5억2500만원)가 14명인데 그 가운데 국민회의가 10명, 자민련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각각 2명씩이었다.

이같은 현상을 건국 이래 한국 정치사의 전통 아니냐고 웃어 넘길 수만은 없다. 어느 나라나 정치자금은 주로 기업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선진국이라는 데 치고 우리같은 우스운 여야 편차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의 여야 관계가 비정상이어서 그런지, 정치와 기업의 관계가 빗나가고 이상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무엇이건간에 이를 분석하고 시정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 정상화하고 바로잡는 것도 개혁이다.

다음으로 여당 정치자금의 지나친 대기업 편중이 역대 정권과 다르지 않음을 주목하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대기업이 이름을 내걸고 투명하게 영수증까지 받아가며 헌금하는 것이므로 음성적 뇌물성 자금에는 비할 수 없이 당당한 돈이기는 하다. 그러나 심지어 거저 내는 ‘자선’기금에도 의도는 있는 법이니 정치자금을 많이 내는 대기업측은 당연히 ‘희망과 요구’가 없을 수 없고, 얻어 쓴 측은 그 나름의 ‘배려’가 불가피할 것이다. 나라와 국민이 대기업병(病)으로 인해 온통 간난(艱難)과 신고에 시달리는 점을 상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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