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황석영의 베스트셀러 소설 ‘장길산’(풀빛출판사)을 20권 전작의 만화로 내놓았던 그가 이번에는 임꺽정 시대를 소재로 한 만화 ‘삐리’(서울문화사)를 출간했다.
‘삐리’란 남사당패에서 춤추는 아이(舞童·무동)을 일컫는 순수 우리말. 장터에서 광대놀음을 하는 서자 출신의 악사 ‘여얼’과 그의 미소년 아들 ‘방울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98년 대한민국 출판만화 대상을 수상했던 장편만화 ‘토끼’에서도 ‘씨동’이라는 평범한 포졸의 눈으로 홍경래난을 그려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민초들을 통해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백씨는 “똑똑한 천재에는 관심없다. 내 신세도 그저 이름없이 한 세상 살다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양화의 수묵 기법을 이용해 힘있고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그의 붓터치에는 민초들의 삶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수묵기법 이용 사실적 묘사
이 만화의 첫 장면은 높이 치솟아 올라 동그라미를 그리는 ‘방울매’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시작된다. 이는 장터에서 빙글빙글 패랭이를 돌리는 ‘방울이’의 모습과 닮았다. 하늘도 돌리고, 땅도 돌리는 것은 다름아닌 방울이인 것을….
백씨는 그의 작품을 만화대신 ‘마당 그림’이라고 부른다. 91년 그만의 독특한 그림체를 완성한 ‘장길산’이 나오자 사람들은 “만화로도 이런 민중의 역사를 묘사할 수 있구나”라며 놀라워 했다. ‘장길산’은 작가 황석영이 직접 스토리를 쓰고 백씨가 남한강변의 산골마을인 경기 광주군 퇴촌면 광동리에서 2년 동안 틀어박혀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곳에서 그는 수묵화 같은 산하(山河), 주름진 농투성이 등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서라벌예대 회화과 1년을 중퇴한 뒤 30년간 ‘역사 만화’만을 고집해온 그는 “앞으로 펜터치 없이 붓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만화를 시도해 볼 예정”이라고 말한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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