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총리의 이같은 말을 두고 정치권이 술렁거리고 있다. 김대중대통령의 비서 출신인 국민회의 설훈의원이 “신당을 이끌 사람이 JP밖에 더 있느냐”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 것을 보면 이른바 ‘2+α 신당’에 대한 청와대의 속내는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민주정치는 말의 예술이다.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서 주먹다짐과 멱살잡이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은 제대로 된 예술적 정치를 바라기에는 우리 민주주의 역사가 아직 짧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해 준다. 그런 면에서 특유의 선문답(禪問答)을 자랑하는 김총리는 단연 돋보이는 ‘예술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두 여당의 합당에 관한 이번 김총리의 말은 예술작품이긴 하되, 유감스럽게도 동네 이발소에 걸린 싸구려 그림처럼 아무 감동을 주지 않는다.
만약 그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판단하겠다”고 했다면 그 말에 시비를 걸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는 ‘항상’ 그랬다고 한다. 정말일까? 남의 속을 들여다볼 도리는 없으니 누구도 확답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담긴 정치인 김종필의 독선과 아집이다. 김총리가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면 그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민주적 헌정질서를 뒤엎는 군사쿠데타를 주동했고 민정이양 공약을 위반한 박정희 정권의 제2인자가 되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노태우 김영삼씨와 3당 합당을 했고, 다시 그 당을 뛰쳐나와 자민련을 만든 것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였다. 내각제 개헌을 조건으로 DJP연합을 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 약속을 파기한 DJ와 당을 합친다면 그것 역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다.김총리의 말을 뒤집어 해석하면 정치적 고비에서 그와 다른 선택을 한 정치인들은 ‘국가와 민족의 이익’이 아니라 ‘개인이나 정파의 이익’을 앞세웠다는 의미가 된다. 내각제 개헌론의 깃발을 끌어안은 채 낙선을 각오하고 JP와 결별하려는 일부 충청권 의원들이나 자민련과의 합당에 부정적인 입장을 개진하는 ‘α세력’과 ‘젊은 피’들 역시 ‘개인이나 정파’의 이익에 눈먼 사람들이 된다. 과연 이렇게 말해도 되는 것일까?
애국심은 좋다. 하지만 ‘과장된 애국적 제스처’는 다르다. 더욱이 그 제스처가 ‘개인과 정파의 이익’에 대한 욕망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라면 그건 ‘위선’이 된다.
연립정권을 운영하면서 숱한 갈등을 일으켰던 자민련과 국민회의가 아예 살림을 합치고, 거기에다 DJP 세대의 권위주의 문화를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진보적 사회운동가와 386의 ‘젊은 피’를 얹어 만드는 ‘한 지붕 세 가족’의 정당이 ‘국가와 민족의 이익’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만든 신당은 민자당이 그랬던 것처럼 머지않아 핵분열을 겪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하겠다면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날 권력자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라는 명분 아래 저질렀던 숱한 독선과 오만을 나는 아직 잊지 않았다. 그래서 김총리와 같은 힘센 정치인들에게 부탁드린다. 당신들은 오로지 개인의 신념과 정파의 이익을 위해 판단하십시오. 그것이 정말로 ‘국가와 민족을 위한’ 선택인지 여부는 유권자가 판단합니다.
유시민(시사평론가) denkmal@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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