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남찬순/'기회의 문'

  • 입력 1999년 9월 20일 19시 42분


이 땅에 태어났는데도 강보에 싸여 혹은 고사리 손을 잡힌 채 낯선 나라로 떠났던 아이들. 세월이 지나 스스로 의식의 세계를 갖게 됐을 때 처음 느끼는 주변사람들과의 이질감. 그러다 어렴풋이, 그러나 점점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아버지 어머니의 나라. 그때부터 끝없이 밀려오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회의와 절망. 이는 대부분의 해외 입양아들이 거치는 성장과정일 것이다.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는 간절한 심정으로 김포공항에 내리는 ‘성인 입양아’들을 보면 괜히 죄책감이 든다. 우리 모두가 그들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자괴심때문일까. 그러나 성공적인 삶을 이룬 ‘성인 입양아’들에 대해서는 인간승리의 감동도 느낀다. “이제는 나를 버린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라며 당당하게 조국을 찾는 그들의 모습은 더욱 자랑스럽다.

▽한국인 입양아로 사상 처음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에서 3위에 입상한 수전 스패포드도 그런 자랑스러운 ‘성인 입양아’다. 미국의 명문 이스트먼음악스쿨에 다니는 스패포드 역시 작년 크리스마스 무렵 20년만에 부모님의 나라를 찾았다고 한다. 친부모도 만났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를 버린 부모나 조국에 대한 원망의 빛은 조금도 없다. 우리로서는 그렇게 그를 키워준 양부모 그리고 미국사회에 감사할 뿐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개인의 능력과 재능을 중시하는 나라다. 비록 소수민족 출신이라 해도 ‘기회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 동양인도, 흑인도 누구나 미스 아메리카가 될 수 있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의 입양아들이 자라는 것은 그래도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미국으로 입양되는 한국아이들이 아직도 매년 160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아무리 기회가 보장된 풍요로운 곳이라해도 내 나라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왜 우리는 그 많은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시켜야 하는가.

〈남찬순 논설위원〉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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