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국민건강보험법 문제점

  • 입력 1999년 9월 26일 19시 58분


의료보험통합을 다루고 있는 ‘국민건강보험법’이 올 1월 여당에 의해 강행처리됐으나 미비점이 많아 그대로 실시될 경우 내년 1월부터 보험료의 급격한 인상과 보험료 부과과정에서의 혼선 등 ‘의보대란(醫保大亂)’이 우려되고 있다.

당시 통과된 법안은 2000년 1월부터 직장의보와 공무원 사립학교교직원 의보의 기구 및 재정을 통합하고 지역의보 가입자(자영업자)의 보험료 부과기준을 현행 ‘소득+재산’에서 ‘소득’으로 단순화하는 것이 골자.

▼소득파악 제대로 안돼▼

▽현행법 시행에 따른 문제점〓정부가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점들이 무더기로 나타났다. 가장 큰 문제는 자영업자들의 소득파악률이 정부측이 당초 ‘순진하게’ 전망했던 목표치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 이에 따라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자신들의 ‘실제소득’에 비해 훨씬 낮은 의료보험료를 내고 저소득층 부담은 커지는 등 의료보험료 부과과정에서 ‘제2의 국민연금파동’이 재연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직장의보와 공무원 사립학교교직원 의보의 재정통합도 의료보험료의 대변동을 가져올 전망. 올 1월 통과된 법은 의료보험료의 부과대상이 되는 봉급을 현행 ‘기본급’ 대신 수당 상여금 등이 포함된 ‘총보수’ 개념을 도입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총보수’ 개념을 도입할 경우 공무원 사립학교교직원 의보가입자는 의료보험료가 월평균 2만원 정도 내리지만 직장가입자는 평균 5000원 정도 오르게 된다.

더욱이 연봉에서 상여금 비중이 큰 대기업직장인과 금융업종사자들은 의료보험료가 현재보다 적어도 2배 이상 오를 전망이어서 격렬한 반발이 예상된다.

▼여권 수정안 급히 마련▼

▽정부 여당의 대책〓정부 여당은 뒤늦게 이같은 문제점들을 파악하자 직장의보와 공무원 사립학교교직원 의보의 기구통합은 예정대로 하되 재정통합을 2년 동안 연기하고 지역가입자의 의료보험료 부과방식을 2001년 12월까지는 현행대로 유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황급히 마련했다. 이 경우 지역가입자는 당분간 현행대로 소득과 재산에 비례해 보험료를 내게 되며 직장가입자의 경우도 급격한 의료보험료 변동요인이 없어지게 된다.

당초 정부 여당은 7월에 이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제출했으나 야당이 반발하자 지난달 31일 정부가 이 법을 정식 입법예고했다.

▼이해집단 엇갈린 반응▼

▽이해당사자들의 입장〓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이해당사자들은 정부 제출 개정안을 놓고 연일 여의도에서 시위하는 등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직장의보가 소속된 한국노총은 개정안을 통과시킬 때 의료보험 기구통합도 2년 동안 유보할 것을 주장한다. 반면 시민단체들과 지역의보가 소속된 민주노총은 현행법대로 내년 1월부터 의료보험통합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신 지역의보 재정에 대해 50% 국고지원을 해야 하고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를 직장의보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요구한다.

▼개정안 통과 불투명▼

▽개정안 국회통과 전망〓정부 여당은 개정안이 늦어도 9월까지는 국회를 통과해야 ‘의보대란’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민회의 정세균(丁世均)제3정책조정위원장은 “시행령 시행규칙제정 등을 위해서는 최소한 3개월 이상이 필요한 만큼 9월까지는 개정안이 처리돼야 내년 1월부터 법이 시행될 수 있다”면서 “1월에 통과된 법안이 보건복지위 합의통과안이므로 야당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정감사가 29일부터 다음달 18일까지 예정돼 있어 당분간 개정안의 국회통과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나라당은 정부제출 개정안 중 지역가입자에 대한 보험료부과방식 현행유지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재정통합유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와 관련, 차흥봉(車興奉)보건복지부장관이 최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를 만나 협조를 요청했지만 확답은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정부와 여당이 졸속으로 일을 추진, 법이 시행도 되기 전에 개정안을 내는 등 혼선을 빚고 있다”면서 “여당이 의료보험통합문제에 대해서 분명한 입장을 밝히면 그 때 야당도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이 제각각이어서 야당도 당론을 정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하다.

〈공종식기자〉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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