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기원/한국축구가 일본에 진 이유

  • 입력 1999년 9월 30일 19시 59분


올림픽 축구 대표팀이 최근 한일전에서 2연패 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는 사람이 많다. 유독 한일전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도 씁쓸한 일이지만 일본에게 내리 두번씩이나 패했다는 것은 더욱 자존심이 상한다. 일본 축구의 약진을 바라보며 곧 우리를 앞지를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예견이 적중한 셈이다.

물론 한국의 상대는 일본만이 아니고 일본을 이기는 것만이 한국 축구의 목표도 아니다. 그렇지만 일본의 성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입장이다. 국민 정서로 보나, 과거사로 보나,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국으로서나, 일본은 한국의 라이벌임에 틀림없다. 그런 일본에게 한국 올림픽 대표팀은 개인기와 조직력에서 뿐만 아니라 경기 운영 능력에서도 모두 뒤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더욱 불안한 것은 최근 일본에게 계속 끌려 다니는 경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늘 그랬듯이 한국 축구와 축구계는 아직도 달라진 것이 없다. 비난과 비판, 책임 회피, 관계자 인책론 등도 전과 다를바가 없다. 한일전이 아니라, 내일의 한국 축구가 걱정이다.

축구는 개인기를 바탕으로 한 팀워크의 경기이다. 개인기는 완벽한 기본기 위에 쌓아가는 것으로 하루 아침에 숙달되지 않는다. 조직력 역시 한두 차례 훈련으로 짜여지는 것이 아니다. 개인기는 좋은 시설에서 유능한 코치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지도로만 다져지고, 조직력은 반복 연습과 실전을 통해 습득된다. 장기적인 치밀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선수들에게만 준비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전반적인 축구 수준 향상을 위해 축구협회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비정상적인 학교 축구, 유소년 축구에 대한 무관심, 땜질식의 일관성 없는 정책 등 한마디로 대책없는 한국 축구다. 기초 기술은 고사하고 규칙이나 축구 정신등 기본 교육은 무시한 채 초중학교에서도 이기는 방법만을 가르치고 있다. 어린이 축구는 맨 땅이나 인조 잔디구장이 무대이다. 즐기는 축구가 아니라 상급학교 진학의 방편으로 축구를 하는 것도, 자격 미달의 지도자가 어린이 축구를 담당하는 것도 문제다. 한국 프로축구 선수는 대부분 대졸이고 고졸 출신은 겨우 10.5% 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프로축구 J리그는 고졸 출신이 67%로 주류를 이룬다.. 올림픽 대표도 일본은 거의가 프로인데 한국은 대부분이 학생 선수다. 일본은 ‘타도 한국축구’라는 기치를 내걸고 오래 전부터 철저히 준비했다. J리그의 출범 시설 유소년 축구가 좋은 예다. 한국은 그동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 왔는가. 합숙이나 전지훈련, 선수교체만으로 실력이 급속히 나아지지 않는다.

근본적인 대비, 장기계획이 부족했다. 이번 한일전의 참패는 준비한 축구와 준비없는 축구와의 차이였다.

불만이나 토하고 질타나 하고 있을 때가 이나다. 안된다고 좌절할 수는 더욱 없다. 학교 축구를 정상화하고 관심과 투자로 유소년 축구를 활성화 시켜야 한다. 대표팀 이상으로 잔디구장, 훌륭한 지도자, 우수한 심판의 확보와 양성도 절실하다. 체력이나 투지만을 강조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기술 축구, 조직 축구를 추구해야 한다. 어느 일본 기자가 말했듯이 이제는 생각하는 축구를 해야 한다. 축구협회와 프로연맹이 유청소년 축구 중흥책을 마련해 일부 시행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축구인들의 반성과 각성이 있어야 한다. 축구에 대한 인식과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기본기와 함께 축구가 무엇인지, 축구정신이 무엇인지를 먼저 선수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번에도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된다. 감독 등 관계자들을 성토하고 몇명의 프로선수를 보강하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늦었더라도 준비를 해야 한다. 98년 월드컵에서 프랑스는 그냥 우승한 것이 아니었다. 선진 축구로의 도약, 세계 정상권 진입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2002년 월드컵을 위해서도 준비를 해야 한다. 축구인 모두의 의지가 하나로 모아져야 할 때다.

한일전이 열린 잠실구장에 ‘붉은 악마’들이 내건 현수막에는 ‘NO PAIN, NO GAIN’(고통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이라고 쓰여 있었다.

서기원(축구 전문 캐스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