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부모잃은 형제 20년째 내자식처럼』

  • 입력 1999년 10월 1일 20시 28분


“아이들이 좋은 사람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며야 할텐데….”

부산 동부경찰서 신동용(申東龍·44)경위 부부에게 요즘 생겨난 걱정 아닌 걱정거리다.

신경위 부부가 결혼 걱정을 하는 아이들은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과 고등학교 1학년인 딸이 아니다.이들 부부가 19년째 돌보고 있는 오상민(吳相民·24)씨 형제다.

신경위가 이들 형제를 처음 만난 것은 80년6월. 당시 5세이던 상민씨와 세 살 아래의 상렬(尙烈·21)씨는 아버지(당시 28세)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 졸지에 고아가 됐다.

당시 순경 공채에 막 합격해 부산 동래경찰서 온천파출소에 근무하던 신경위는 주민들로부터 이같은 딱한 소식을 전해듣고 사정이나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들 형제의 집을 찾았다.

그러나 가재도구마저 하나 없이 텅빈 방에 어린 상민씨 형제만 덜렁 남은 것을 본 신경위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에 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당시 부모님, 남동생과 함께 살던 신경위는 한동안 상민씨 형제의 어머니와 친척을 수소문했으나 찾을 길이 없자 결국 자신이 키우기로 결심했다.

다음해 1월 결혼한 부인 오매숙(吳梅淑·43)씨도 남편의 뜻에 선뜻 동의해줬다. 상민씨 형제와 신혼방에서 함께 자는 불편에도 부인 오씨는 싫은 내색 없이 이들을 친자식처럼 돌봤다.

신경위 부부는 상민씨 형제가 성장하면서 자괴감을 갖지 않도록 자신들을 고모부 고모로 부르게 하고 잘못하면 친자식들과 똑같이 매도 들었다. 상민씨 형제도 처음엔 매를 드는 신경위 부부에게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우리를 친자식처럼 생각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 뒤부터는 두말없이 종아리를 걷었다.

또 이같은 부모의 영향을 받아 신경위의 아들과 딸도 상민씨 형제를 스스럼 없이 형 오빠라고 부르며 친형제처럼 지낸다.

신경위 부부는 아이들이 커 집이 비좁아진 90년부터는 옆집에 상민씨 형제를 위해 300만원짜리 전세방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곳에선 잠만 자고 식사는 꼭 자신의 집에서 함께 하도록 했다.

이같은 신경위 부부의 따뜻한 배려 아래 상민씨 형제는 큰 어려움없이 경남상고와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96년부터 경남 진해시에 있는 선박부품 제조업체 동방선기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다.

“아이들이 첫월급 타던 날 우리 부부의 속옷을 사가지고 왔을 때 너무 기뻐 집에서 ‘맥주파티’를 열고 그동안 지내온 얘기를 하는 데 눈물이 나더군요.”

신경위 부부는 맥주파티가 끝난 뒤 상민씨 형제의 월급통장을 압수하고 필요한 용돈을 매달 타서 쓰게 했다. 상민씨 형제의 결혼자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상민씨 형제의 통장에는 각각 1000여만원씩 들어 있다. “어떻게 번 돈인데 함부로 쓸 수 있나요. 결혼할 때까지 5000만원씩은 모아야 할텐데….”

신경위 부부의 걱정에 상민씨 형제는 “고모부와 고모의 걱정을 덜어주려면 앞으로 돈을 많이 벌어야겠지요”라며 환히 웃었다.

〈부산〓이현두기자〉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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