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상당수 의원과 피감기관의 ‘높은 사람들’간에 오가는 얘기를 듣다 보면 어린이들 대화처럼 유치한 부분도 눈에 띈다.
―당신, 공무원 생활 얼마나 했어요.
“29년 됐습니다.”
―그럼 할 만큼 했는데, 그래서 그렇게 답변이 현학적인가요.
기선을 제압하려는 듯 ‘기합 주기’식 발언으로 나오는 의원.
업무 보고를 하는 중에 사소한 통계 하나를 물고 늘어져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의원도 있다.
답변자가 원래 웃는 표정인 것도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다.
“왜 웃고 그러느냐, 엄숙해야 할 국감장을 모독하는 거냐.”
그렇게 말하는 의원 본인은 과연 평소얼마나 엄숙한 심정으로 국회 의석을 지키고 있는 걸까.
본질을 꿰뚫는 질의보다는 목소리만 큰 질문자. 날카로운 ‘송곳’보다는 노상에서 잘잘못을 가리는 운전자들처럼 ‘메가폰’의 잡음만 소란하다.
피감기관측은 또 어떤가. 답변에 나선 사람들마다 ‘존경하는’ 분들이 많기도 하다. 답변의 서두는 으레 ‘존경하는 의원님’으로 시작된다.
넘치는 존경심을 주체할 수 없는 것 같지만 막상 답변 내용은 알맹이가 없다. 번드르르한 ‘허사(虛辭)’와 공허한 고성이 오가는 이곳이 바로 1년 국정을 총결산하는 현장이다.
정치는 결국 말로 이뤄지는 작업이라고 한다. 영국 의회의 권위는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못쓰게 할 정도로 품위를 강조하는 데서 나온다는 얘기가 있다. 우리 국감장에서 그런 신사적인 풍토와 고품격을 기대하기에는 아직 이른 걸까.
이명재<정보산업부>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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